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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일성, 1965년 '제2차 한국전쟁' 준비했었다

중국 외교부 기밀문서 통해 확인...中에 파병 요청까지

[편집자주]

지난 1994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左)와 2011년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右) ©AFP=News1 한상령 인턴기자


지난 1994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이 1965년 '제2차 한국전쟁'을 준비하며 중국에 파병 요청까지 했던 사실이 24일 중국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청샤오허(成曉河) 중국 인민대학 교수는 이날 열리는 평화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앞서 미리 배포한 토론자료에서 중국 외교부 기밀해제 문서(No.106-01480-07)를 인용해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청샤오허 교수는 김일성이 지난 1965년 당시 북한 주재 중국대사인 하오더칭(郝德靑)에게 "북한은 조만간 전쟁을 일으킬 것이며 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전쟁을 하게 되면 중국에서 군대를 좀 파병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내용은 공개된 기밀문서 중 '조선인민공화국 주재 대사 하오더칭의 김일성 주석 담화 현장'이라는 제목의 문서에 담겨 있다.

김일성은 또 하오더칭 대사에 "남조선 인민들은 계급투쟁이 고조되고 갈등이 증대되어 전쟁을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미 생각해 두었고 준비했으니 이대로만 하면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일시적으로 기밀문서를 해제한 바 있으며 청샤오허 교수도 이때 관련 문서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밝혀진 중국 외교부의 기밀 문서에 따라 북한이 1950년 6·25 전쟁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한반도의 무력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1965년 당시 한국은 전년도에 발생한 한·일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6·3사태로 인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며 정국이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물론 우리 정부 역시 전투 부대를 파병하며 한-미의 전투력이 분산된 시기였던 것 역시 김일성이 제2차 한국전쟁을 구상하게 된 이유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1965년 2월 26일 유엔에 한반도에서의 유엔군 철수를 요구했으며 4월에는 적화통일을 위한 '3대 혁명역량'의 강화를 강조하는 등 무력도발 분위기를 고조시켰었다.

청샤오허 교수는 "그러나 김일성은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며 "이후 김일성과 중국이 재차 무장통일 문제를 논의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1972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등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무력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전환한 것으로 평가한다.

청샤오허 교수는 또 "60년대는 사실상 북한이 최후의 수단으로 다시 무장통일을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시기"라며 "이후 중미 긴장완화 및 한중 외교관계의 수립으로 인해 북한은 다시 무력 통일이라는 역사적 기회를 상실했으며 무력통일에 대한 외부의 지원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국은 북한의 무력사용을 지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력을 통한 정책 목표 실현 또한 반대한다"며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 역시 대부분 중국의 노선을 따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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