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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보안법' 위반했다가…38년만에 무죄

술 취해 "박정희가 최고 역적이다" 등 발언 혐의로 기소
재심 재판부 "혼잣말로 불평한 것…북한 이롭게 안해"

[편집자주]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정부·대통령을 비난했다는 혐의로 경찰·검찰의 조사를 받고 기소까지 됐던 남성이 38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막걸리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이 남성은 1986년 사망했기 때문에 무죄 판결은 그 아들과 딸들이 대신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용현)는 반공법,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던 고 김모씨(기소 당시 45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김씨는 1975년 술에 취한 상태로 자신의 집에서 세입자들에게 "북한 외교가 더 우월해 외무장관이 북한 외교에 졌다" 등 발언을 한 혐의로 같은 해 기소됐다.

김씨에게 적용된 법은 반공법으로 검사는 기소 당시 "김씨가 이 발언을 통해 북한과 북한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하는 등 북한을 이롭게 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술에 취한 채 "긴급조치가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 그런 악법 만들면 나도 대통령 하겠다", "야당 당수를 가둬넣은 것은 독재자다", "박정희는 최고 역적이다" 등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긴급조치 9호의 '유언비어 날조·유포' 혐의까지 받았다.

그러나 37년만에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게 된 재심 재판부는 김씨가 당시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은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김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 발언은 시사적 관심사에 대한 의견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잣말로 불평하는 정도에 불과했다"며 "이 발언들이 북한에 이익이 된다고 보이지 않고 김씨에게도 북한에 이로운 발언이라는 인식이 없었다"고 판단해 반공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봤다.

또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긴급조치 9호를 위헌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위헌·무효인 법률을 적용해 기소된 사건이므로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의 유언비어 날조·유포죄는 유신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하거나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며 "헌법을 심각하게 침해·제한해 위헌 무효"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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