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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출산의 새풍속도…'난자 동결'하는 골드미스

"여유 갖고 아이 낳고 싶다" 문의 이어져…비용·시간·주변 시선 때문에 고민

[편집자주]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서른셋인데 아직 남자친구도, 결혼 계획도 없어요. 아이가 꼭 필요하단 생각은 없지만 언젠가 원하게 될 때 임신이 힘든 나이일까 봐 걱정이에요"

최근 만혼이 증가하면서 김가영(가명)씨처럼 고령 출산에 대비해 좀 더 건강한 아이를 낳고자 난자 동결에 관심을 보이는 미혼 여성들이 늘고 있다. 난자 동결은 난자를 채취해 얼려서 보관했다가 훗날 임신하고 싶을 때 녹여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2~3년 사이 난자 동결 관련 상담을 요청하는 30대 중후반 여성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노산 부작용에 대한 걱정과 출산을 잠깐 미루고 경력을 잇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출산·결혼 미루는 골드미스들

난자 동결을 고민하는 미혼 여성 대부분은 전문직에 종사하며 경제적 여유가 있는 30대 중후반 골드미스들이다. 이들은 당장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없지만 만약을 대비해 일종의 보험처럼 난자 동결을 고민한다.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서모(35·여)씨는 "나이는 들고,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 기를 형편은 안되지만 언젠가 여유가 될 때 건강한 아이를 낳고 싶어 난자 동결을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정자와 달리 난자는 나이에 크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여성 나이가 37~38세를 넘으면 난소 기능이 감소해 임신 성공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직장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난자를 동결하려는 이도 있다. 한 여성은 "직장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는 기쁨이기도 하지만 큰 족쇄이기도 하다"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 여유를 갖고 아이를 낳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난자 동결에 나선 데는 그만큼 과학기술이 발달한 배경도 있다. 난자 동결은 원래 암 환자나 조기 폐경을 앞둔 여성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시술인데 전에는 얼리는 과정에서 난자 손상이 심했다. 요즘 이용되는 '유리화동결법'(Vitrification)은 액체 질소를 이용해 난자를 아주 빠른 속도로 얼려 손상이 그리 크지 않다.

이 교수는 "얼렸다가 녹인 난자와 얼리지 않은 난자의 임신 성공률이 거의 비슷한 정도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서울 라헬 여성의원 김지현 원장도 "합병증이나 부작용은 일반 시험관 아기 시술과 비슷하다"며 "특히 젊은 여성들의 난자일수록 생존율은 더 높다"고 말했다.

비용은 병원마다 다르지만 난자를 채취해 동결하는 데 약 300만원이 든다. 보관 비용은 1년에 10만원 정도다.

◇비용·시간·주변 시선 때문에 고민…"사회적·윤리적 논의 필요"

미국 등 해외에서 난자 동결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미국 페이스북과 애플은 임신을 미루는 여직원들에게 사내 복지로 난자 동결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혀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문의는 늘고 있지만 실제로 난자 동결에 나서는 여성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난자 동결 기술을 가진 국내 유명 병원인 서울 차병원의 경우에도 난자를 동결 보관 중인 미혼여성은 36명(2012년 기준) 정도다.

일단 비용과 시간이 부담이다. 김재명 세화병원 불임연구소 소장은 "난자 채취를 위해 열흘 가까이 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맞아야 하는 등 번거로운 과정이 많아 상담은 해도 정작 시술에 나서는 미혼 여성은 한 달에 한 명꼴"이라고 말했다.

주위에서 보는 시선도 그리 고운 편은 아니다. 이동윤 교수는 "법률적,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대리모 출산처럼 사회적으로 꺼리는 시술이 있다"며 "난자 동결 시술이 보편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지는 사회적, 윤리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시술에 나서는 여성이 적더라도 시술을 이용해 임신과 출산을 미루려는 여성들이 나타난 현상 자체를 두고 흥미롭다는 지적도 나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연의 영역인 출산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여성들이 생겼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혼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엄마가 될 기회를 유지하려는 이런 생각은 미국처럼 결혼과 출산을 분리해 보는 시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임팩트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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