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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사라진 ‘이화동 벽화 마을‘을 둘러싼 시선과 사연

방문객 "소음 때문이라니…당혹스럽고 미안"
주민 "시끄럽다" vs "발전 과정" 분분 엇갈려

[편집자주]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두터운 옷을 입고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두터운 옷을 입고 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 마을의 한 골목에는 약 30명의 중국인이 벽화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비슷한 옷을 맞춰 입은 커플 네댓도 봄 햇살을 즐기며 골목을 거닐고 있었다.

이화동 벽화 마을은 지난 2006년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총사업비 2억5000만원을 들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로 조성됐으며 현재 총 70여개의 작품이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원래 진행되고 있던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재개발이 무산될 상황에 처하자 사업을 반대했다.

이후 서울시는 주거환경 개선을 골자로 하는 이화성곽마을 재생사업을 제안했다. 현재까지 재생사업은 주민 협의 과정에 있으며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다.

벽화 마을의 고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2010년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벽화마을의 '날개 벽화'가 전파를 타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해 소음과 낙서, 쓰레기 등으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양극화됐다. 이화동을 주거지로 삼고 있던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일으키는 소음 공해로 지난달 벽화를 훼손하기에 이르렀으며, 마을의 개발을 우선시하는 주민들과의 갈등도 빚게 됐다.

◇벽화 마을 방문객…벽화 사라져 '당혹' 또는 '미안'

하지만 이날 이화동을 찾은 방문객 대부분은 자신이 인근 주민에게 일으키는 피해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와 함께 벽화 마을을 찾은 서울 성북구 주민 정예인씨(21·여)는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라 방문자들의 소음이 문제가 될 줄은 생각 못 했다"면서 "내가 타인에 불편을 끼치고 있다니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정씨의 친구 김정선씨(21·여)도 "모처럼 즐기러 왔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금방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주민들이 안쓰럽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은데 이 사람들까지 다 관리하려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민들의 불편을 알고도 조심스레 마을을 찾은 방문객도 있었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임유림씨(24·여)는 "이곳 주민들이 소음과 낙서 때문에 문제를 제기해왔다는 사실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산책을 하기 좋은 공간이기 때문에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걸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끔 방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지만 요새 들어 이화마을에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주민들이 소음을 더 견디기 힘들어졌을 것 같다"고 난감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뉴스1 © News1
서울 종로구 이화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뉴스1 © News1
◇주민 반응…"소음 골치 아파" vs "마을 발전 과정"

실제 주민들의 반응은 양쪽으로 갈렸다. 수십 년간 이화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모씨(89·여)는 "아침부터 시끄러워 살 수가 없다. 벽화 때문에 애먹고 있다"며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몰려갔다 나갈 뿐 장사도 잘 안 된다"고 불평했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50대 남성 이모씨는 "소음은 물론이고 낙서도 이전까지 아주 심했다"며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고 고개를 저었다.

반면 주민 강모씨(57)는 "소음과 낙서를 둘러싸고 일어난 다툼은 이화마을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벽화 사건을 계기로 마을이 더 살기 좋으면서도 관광 친화적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벽화 훼손' 당사자는 "혐의 인정하지만 억울해"

한편 최근 이화동의 해바라기 벽화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박모씨(55)는 "지난달 15일 벽화 위에 페인트를 덮었다"고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씨는 "이곳은 벽화 때문에 오전 7~8시면 사람들이 몰려와 새벽 3시까지 시끄럽다. 최근 벽화를 지우면서 사람들이 많이 줄어 그나마 살기 좋아졌지만 이전까지는 사람 사는 곳이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씨는 벽화를 훼손한 이유에 대해 "종로구청이 지난달 4일 '관광객 유입은 주민들이 스스로 벽화를 그리고 홍보해 관광객이 많아진 것'이라고 공문을 보내왔다. 벽화를 주민이 스스로 그렸다니까 지워도 되겠다 싶어서 '그렇다면 사유지가 아닌 곳에 그려진 벽화를 지우겠다'고 시와 구청에 전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래서 도로에 그려진 꽃 그림계단만 지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화동 주민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벽화마을의 몇몇 벽화는 주민들이 그린 것이지만 대부분은 2006년 당시 '낙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학생 위주의 자원봉사자들과 대학 교수들이 그리고 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씨는 "그림을 지운 주민들이 바라는 건 간단하다. 시와 구청이 타지인이 아닌 진짜 거주하는 주민들과 함께 협의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화동 주민협의회 관계자는 "처음에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1년에 몇 차레 주민들을 공개적으로 불러서 설명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편이 갈라지게 돼서 당혹스럽다"며 "(벽화 사업은) 마을의 발전과 개발을 위해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협의 하에 진행됐고 이미 다 정착된 사업이다. 그런데 주민끼리 오해가 생기면서 벽화를 지우는 사람과 지우지 않는 사람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화마을 벽화 중 대표적인 그림인 해바라기 그림과 잉어 그림을 페인트로 지운 혐의(공동재물손괴)로 박씨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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