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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공책]'아수라'가 불친절? 김성수가 그린 치밀한 씬시티

영화 '아수라' 리뷰

[편집자주]

영화 '아수라'는 진정 범죄 액션 누아르 장르의 겉멋만 든 영화일까, 혹은 다섯 악인의 폭주하는 광기가 그저 불편한 영화일까. 영화는 분명 뚜렷한 장점을 두루 안고가는 작품이지만 노골적인 악의 묘사와 폭력성 때문에 점수를 짜게 받고 있는 듯하다. 예상했던 평균 수준 보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평이 나오고 이유는 캐릭터의 악행 동기가 설득력과 공감력을 상실했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다섯 남자가 그리 극단적으로 폭주를 해야만 했는지 서사를 충분하게 할애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점수를 아쉽게도 까먹었다는 평이 지배적인 것.

하지만 '아수라'라는 영화에 왜 굳이 인물 전사에 따른 설득력과 공감력을 요하는지 의문이다. 각 캐릭터의 심리에서 공감할 만한 지점들이 많기 때문에 이 영화를 애써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많은 모양새다. 분명히 할 것은 '아수라'는 안남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에 없는, 김성수 감독이 가상으로 만들어낸 악의 도시, 범죄의 도시가 안남시다. 불법과 합법, 정의와 불의가 모호한 '씬 시티'를 연상케 하는 안남시라는 세계에선 악인들이 판친다. 영화 '씬 시티'를 보며 인물 개개인의 상세한 설득력과 공감력을 굳이 요하지 않았듯, 안남시를 보면서도 이를 바랄 필요는 없다.

영화 '아수라'가 오는 28일 개봉한다. © News1star / 영화 '아수라' 스틸
영화 '아수라'가 오는 28일 개봉한다. © News1star / 영화 '아수라' 스틸

즉 안남시라는 공간은 얼마든지, 충분히 5인의 악행 동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목적이 얼마든지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고 믿게끔 만드는 도시,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고 소용돌이치는 안남시에서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고 살아간다. 비리경찰 한도경(정우성 분)은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뒷일을 도와주고 이에 무감각해진 상태로 죄책감은 잊은지 오래다. 재개발을 앞둔 낙후된 안남시는 박성배가 시장으로서 개발해야 할 도시다. 더 큰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비는 필요치 않다. 살인청부도, 정치쇼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

한도경과 박성배 외에도 김차인(곽도원 분) 외에도 도창학(정만식 분), 문선모(주지훈 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김차인이 단순 출세 때문에 박성배의 악행을 밝혀내는 데 집착을 하는 것이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하지만 지방 출신에 빽조차 없는 검사가 안남시 같은, 비리가 판치는 범죄 도시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큰 권력을 갈망했을 것이라는 건 자연히 알 수 있다. 도창학은 유일하게 선과 악의 변별력을 흐리지 않으려는 인물이다. 검찰 수사관으로서 진실을 밝히고 증거를 포착하려 하는 등 범죄 도시서 나름의 정의를 구현하려 하면서도 폭력을 가하는 이유는 그 역시도 안남시의 방식에 물든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4인과 결이 사뭇 다른 인물이 바로 문선모다. 문선모가 한도경의 절친한 후배 형사에서 박성배의 충견이 돼가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문선모가 기가 잘 죽지 않는 패기 넘치는 청년인 데다 "우리 시장님이 다 이겨"라며 단순하게 힘의 크기와 서열을 재단한다는 점에서 호기와 야망, 동시에 강한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느껴진다. 그런 면면들을 살펴보면 한도경이라는 선배이자 친한 형이 세상 제일이라 생각했던 문선모가 실은 한도경이 그간 박성배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변하는 건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게다가 문선모는 매사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인물에 가깝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수라'가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 News1star / 영화 '아수라' 스틸
'아수라'가 오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 News1star / 영화 '아수라' 스틸

때문에 핏빛의 '아수라'가 다소 허술하고 작위적이며 폭력이 과하다는 지적은 영화 속 형성된 세계관에 온전히 유입되지 못했다는 말과 같다. 이것이 그간 흥행했던 국내 청불 누아르와도 차별되는 지점이다. 김성수 감독이 활용한 카메라 기법만 봐도 인물을 어떻게 더 치밀하고 섬세하며 디테일하게 표현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사건을 계기로 맞은 후 점점 인물의 얼굴을 밀착해서 보여준다. 다섯 배우들은 클로즈업에 담긴 표정들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그 표정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처절한 액션으로 인물의 감정을 폭발시키고 드러내는 '아수라'는 불친절하지 않다. 때론 강렬한 한 장면이 구구절절한 서사 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배우들의 치열하고 묵직한 열연과 더불어 계획이 틀어지며 발생하는 서스펜스, 상황이 역전되면서 발생하는 인물의 위기와 우발적인 순간들이 몰아치면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나쁜 놈과 나쁜 놈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데, 한도경이라는 인물에 어느새 연민을 갖고 몰입하게 되는 건 상황마다 본능적으로 변하는 인간의 본성을 재지 않고 보여준 정우성의 연기력 덕분이다. 특히 문선모와의 묘한 신경전에서 통제 불가능한 스트레스가 폭발하는 지점은 영화의 전류를 한 순간에 바꿔버리기도 한다. 한도경의 카체이싱과 박성배와 김차인의 장례식 대면 역시 김성수 감독이 가장 공을 들인 지점인 만큼, 공간 연출과 액션 등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데 손색이 없다.

'아수라'가 매력적인 이유는 극한 지옥에서 인간이 더 얼마나 처절하게 악해질 수 있는지 어설프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를 치밀한 세계관 속에 녹여내 하드보일드한 작품을 뚝심 있게 만들어낸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잔인하지만) 매력적인 그림과 이야기로 관객들을 압도하는 영화라는 점엔 이견을 제시할 이는 없을 것 같다. 안남시를 제대로 보여주는 인천, 부산 등 곳곳의 어두운 공간들, 그리고 화룡점정의 화학 작용을 내는 구강 액션을 보고도 정서적 반감과 서사의 개연성에 대해 지적한다면, 그건 먼저 안남이라는 씬시티에 동화되지 못한 까닭이다. 오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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