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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트럼프 당선'보다 더 큰 문제는 '경기 침체'

트럼프, 경제위기 원인 고찰없이 대중의 분노 포착

[편집자주] 김공회 박사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뒤 영국 런던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경제의 현실적 작동에 대해 연구하면서 '정치경제학의 대답: 세계대공황과 자본주의의 미래'(2012, 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한국사회경제학회의 연구위원장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공회 한국사회경제학회 연구위원장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예측을 깨고, 그리고 우리의 ‘문명수준’에 대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믿음을 배반하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으로 뽑혔다.

그의 당선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를 두고 다양한 해석과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아마도 가장 솔직한 대답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것일 듯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힐러리 클린턴의 열성 지지자였던 폴 크루그먼은 트럼프 당선이 확실시된 뒤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칼럼에서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경선 과정에서 드러났듯 트럼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언행이 기존의 ‘정치문법’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정치적 입장 또는 프로그램에도 입각해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결과를 ‘공화당의 승리’라고 할 수도 없다. 부시 전 대통령처럼 공화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요 인물들이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선언할 정도였다.

특정한 정치적 의제나 가치를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했다기보다 트럼프는 노련한 사업가답게 미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어떤 ‘바람’을 감각적으로 포착해내고 거기에 자신을 성공적으로 던져 넣었다. 그 바람이란 바로 ‘분노’다.

분노는 결코 이성적인 반응이 아니다. 대중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람은, 분노의 원인이 제거되어 자신의 분노가 풀리기를 이성적으로 원하기도 하지만 뭐라도 한 대 쳐서 당장의 분을 삭일 수 있다면 기꺼히 그러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인들의 분노는 현재 미국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유래한다.

지난 8년간 오바마 행정부는 다른 선진국들의 정부에 비해 경제위기를 잘 관리한 편이지만, 대중이 체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실질임금 상승은 정체되거나 뒤집혔고, 지표상의 실업률 하락과는 반대로 장기실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소수의 가진자들의 배만 불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 전체가 분노의 원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원인'을 건드린 게 아니다. 그가 한 일은 화난 미국인들의 발 앞에 깡통을 던져준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그 깡통을 힘껏 발로 참으로써 트럼프에 화답했지만, 선거 뒤에도 트럼프가 대중의 분노에 봉사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침묵하는 다수’라고 불렀던 그들은 이제 다시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 앞에는 그들을 분노케 했던 거대한 ‘시스템’이 놓여 있다.

이 시스템의 ‘주인’이 월스트리트 안팎의 자본가들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고 동원하기 위해 트럼프가 내놓았던 약속들이 저 ‘주인’의 의사에도 부합한다고 보긴 어렵다. 트럼프 말대로 당장 외국인들을 미국 경제에서 몰아내면 미국의 거대자본에게 좋겠는가.

그런데도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현재 체제의 실질적인 주인들도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방증한다. 적어도 그들로서는 대중의 분노가 자신들을 향하는 것보다는 트럼프 같은 이에 의해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되는 편이 낫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의 선거는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싸움이었다기보다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함을 정확히 지적한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경선에서 떨어졌을 때 이미 끝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클린턴의 중요한 패착은 대중의 분노를 진보적으로 받아 안았던 샌더스의 ‘유산’을 적절히 계승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였더라면 이겼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좀 더 핵심적인 문제들이 제기됐을 것이고 ‘싸움’은 좀 더 볼 만했을 것이다.

결국 앞으로 일정한 혼란은 있겠지만, 특히 경제 영역에서는 ‘트럼프 변수’보다는 기존의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침체 변수’가 더 중요한 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다. 이를테면, 최근 세계경제의 보호주의로의 회귀 움직임은 트럼프 같은 '대중추수주의적'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이 아니고 이른바 ‘자유무역의 이득’이라는 것이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에 활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그러한 활력을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별적인 자본보다는 각국 정부들과 그들의 세계적 연합체들이 전면에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트럼프의 미국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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