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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한미FTA 재협상' 요구, 거부 가능?…고개 내젓는 협정문

협정개정 위한 '특별공동委' 美 요구하면 응해야
정부 "재협상 개시는 합의 필요" 강변…전문가들 "현실 직시해야"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거듭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공개 언급,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연 200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에 효자 노릇을 해 온 한미 FTA가 사실상 개정 수순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정부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한쪽이 요구한다고 재협상에 즉각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재협상 개시 절차를 놓고 논란이 이는 상황.

그러나 한미 FTA 협정문의 '공동위원회' 조항에 따라 사실상 미국이 개정을 위한 협상 절차를 요구하면 우리가 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특히 협정문 규정을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 미국의 압박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상 '재협상 개시는 양측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 재협상을 가정한 치밀한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정협상 위한 '특별공동위' 소집 요구시 응해야

7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미 FTA 협정문에는 '재협상(renegotiation)'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협정문 끝부분인 24.2조에서 '개정'(amendment)이 규정돼 있다. "양 당사국은 이 협정의 개정에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 개정은 양 당사국이 각자 적용가능한 법적 요건 및 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면통보를 교환한 후 양 당사국이 합의하는 날에 발효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인 개정 절차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협정문 16.7조에는 '각 당사국은 다른 쪽 당사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제시한 사항에 관해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지만 이는 관세나 양허 문제 등 특정 주제에 제한된 규정이다. 

'개정'에 대한 추가적인 언급은 협정문 22.2조의 '공동위원회' 조항에 나온다. 이에 따르면 매년 양국에서 교대로 개최되는 정기 공동위원회와 어느 한쪽의 요청으로 열리는 특별 공동위원회가 있다. 

한미 양국이 2012년 FTA 발효 후 매년 공동위원회를 열어 협정 이행사항 등을 점검하는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특히 공동위원회는 협정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협정문에는 공동위원회가 "이 협정의 개정을 검토하거나 이 협정 상의 약속을 수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더구나 특별 공동위원회는 어느 한쪽의 요청이 있으면 30일 이내에 자동으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미국의 국제통상교섭을 담당하는 무역대표부(USTR)에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특별 공동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것도 이에 근거한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에서 특별 공동위원회 소집을 요청하면 우리가 응해야 하는 것은 맞다"며 다만 "아직 우리 정부에 소집과 관련한 공식 요청이나 서한은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종합해보면 협정문에는 개정(재협상) 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없지만 개정 권한이 있는 공동위원회 구성 요구에는 응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개정 협상을 원하는 미국의 요구로 테이블에 앉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개정 요구를 하면 구조적으로 우리는 거부하기 어렵다"며 "양쪽 합의가 있어야 개정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정부는 특별 공동위 관련 내용을 간과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하는 '재협상'이냐, 법률상 협정문에 나온 '개정'이냐의 용어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엄밀히 따지면 미국은 '재협상'이 아니라 기존의 협정 문안을 바꾸자는 '개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봐야 더 정확하다. 

"재협상 하자"는 트럼프의 잘못된 발언으로 다수 언론들이 '개정' 협상이 아닌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면서 혼동을 준 게 사실이다. 산업부도 이런 상황을 인식해 국내 언론에 재협상 대신 개정 협상으로 써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미국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 부두의 완성차들. /뉴스1DB
미국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현대차 울산공장 선적 부두의 완성차들. /뉴스1DB
 
◇"특별공동위 소집 자체가 사실상 협상 개시" vs "아직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측이 특별공동위 소집을 요구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쟁점은 특별공동위 개최 자체를 개정 협상의 개시로 볼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특별공동위에서 양국의 '합의'로 개정 협상을 개시해야 공식 절차에 돌입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쪽의 요구로는 개정 협상이 시작될 수 없다는 주장과 같은 말이다. 

그러면서 아직 특별공동위 소집 요청도 오지 않았는데 개정 협상을 운운하는 것은 섣부른 예측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FTA 협정을 개정하려면 국회 협의가 우선인데, 최근 미 의회가 트럼프의 한미 FTA 재협상 지시에 제동을 걸면서 특별공동위 소집 요구가 언제쯤 이뤄질지도 불명확해졌다고 본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무역협정 개정에는 의회 협의가 필수인데 아직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측에 언제 요청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아직은 공동위 논의조차 FTA 영향 조사에 그칠지 개정 협상으로 갈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특별공동위 소집 자체가 개정협상 개시나 다름없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 내 절차가 어떻게 전개되든 트럼프가 '협정개정 절차를 개시하기 위한' 특별공동위 소집을 명확히 지시했기 때문이다.

최원목 교수는 "미국은 무역 적자인 기존 협정을 바꾸려는 것이 명백하다"며 "협정 개정은 당연히 양측 합의를 해야 하지만 현 상황을 놓고 보면 사실상 협정 개정절차의 개시는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전문가들 "협정 개정은 불가피…적극 대처해야"

일부에선 미국 측이 사실상 개정 협상 절차에 돌입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한미 FTA를 두고 "끔찍한 협상을 재협상 또는 종료할 것"이라고 공언한 데다 특별공동위 소집까지 지시한 상황에서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개정 협상을 요구할 경우 현실적으로 우리가 피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 명쾌하지 못한 대응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특별공동위가 열렸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 협상을 맡았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보통 양국관계에서 한쪽에서 만나자 하면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상식"이라며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해 온 재협상 빈도와 강도를 감안하면 개정 협상은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특별공동위 소집 자체가 개정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사실상 개정 협상 수순"이라며 "다만 한미 FTA 개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흐른다고 겁 먹지 말고 적극 협상에 나서는 게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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