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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사드 보복, 그 후 제주도

[편집자주]

© News1 
얼마 전 제주도 애월 바닷가에서 며칠 묵었다.

180실 규모의 중저가 리조트 호텔의 아침 풍경은 1년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주차장엔 렌터카가 즐비하고, 식당엔 조반을 먹으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뷔페음식을 접시에 담는 사람들의 거동은 비교적 조용조용했고 자리를 잡고 앉은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도 도란도란했다. 한국 사람이 언제 이렇게 관광지에서 조용했던가 싶을 정도였다.

작년 여름만 해도 이 호텔의 식당은 아침이면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면서 떠드는 소리가 시장골목 같았다. 주차장엔 승용차가 거의 없었고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태울 관광버스가 예닐곱 대씩 서 있었다.

중국인들이 사라지고 보니 알 것 같다. 그들이 얼마나 시끄럽게 관광을 다니는지를 말이다. 이 호텔에선 중국인 관광객들을 이제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어렵다.

이 호텔은 그나마 다행이다. 중국인은 오지 않지만 그 대신 서울 등 육지에서 온 내국인 관광객이 중국 관광객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국내관광객을 끌어들인 결과라고 한다. 이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문을 안 닫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했다.

김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 느끼게 된다. 비행기 안에서는 물론 제주공항 대합실 안에서 중국인의 떠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비행장 주기장에 보통 서너 대씩 서 있던 ‘동방항공’(東方航空)같은 중국 비행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드(THAAD) 보복에서 비롯된 중국의 단체관광객 한국방문 제한 조치 이후 벌어진 일이다. 지난 6,7년간 제주도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중국 관광객 유커(遊客) 붐은 사라졌다.  

중국인이 얼마나 줄어들었을까? 제주관광공사의 6월 통계를 보자. 6월 한 달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3만5469명이다. 작년 6월의 33만235명에 비해 무려 89.3%, 즉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유커를 상대로 장사를 하던 제주도의 모든 업체가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리조트호텔, 면세점, 관광전세버스, 화장품소매업, 음식점, 선물가게와 편의점들이 고객을 잃어버렸다. 제주 속의 중국으로 불리며 하루 7만 명이 득실거리던 ‘바오젠’ 거리는 지금 폐허나 마찬가지다. 중국관광객이 늘어날 것만 예상하고 지어놓았던 중저가 호텔들은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손들 것이다.

제주 경제의 비명소리가 아직 그나마 작게 들리는 것은 국내 관광객이 유커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채워주기 때문이다. 중국인들 사이에 치이기 싫어서 제주도 여행을 꺼렸던 내국인들이 발길을 되돌리고 있다. 제주를 오가는 비행기엔 빈자리가 거의 없다. 여전히 제주공항은 인파로 붐빈다. 올해 6월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은 약 118만 명으로 작년의 약 106만 명보다 11% 정도 늘었다.

금한령(禁韓令)의 쓴맛을 경험한 제주도 안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국인 관광객에 대한 서비스가 개선되어야 하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다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과 동남아 지역에서 들어오는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지역 경제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관광객과 일본인 관광객이 느는 것과 관련하여 제주도의 관광서비스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유커의 퇴조는 단순히 관광산업뿐 아니라 제주도의 미래를 점검할 기회가 아닐까 싶다.

제주도는 지금 중국 중독증(中毒症)에 걸렸다. 지난 몇 년 사이 제주 관광 정책, 투자 및 비즈니스, 주민의식이 유커 붐으로 물들었다. 제주를 바라보는 서울의 투자자나 투기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제주도 부동산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제주도가 주장하는 것을 보면 제주도 부동산 거래 중 중국인이 투자한 것은 소수에 불과하고 제주에 거주하는 중국인 숫자도 미미하다. 다만 인구 대국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유커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중국 특수(特需)가 국내 부동산 투자자들을 자극하고, 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이것이 제주도민을 얼떨떨하게 만들었고, 중국인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제주도 농어촌 주민들의 마음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주민의 생업과 연결되지 않는 거품이다.

제주 부동산 붐은 사드 소동 이후 한풀 꺾였다. 하지만 신축 변두리 아파트 분양이 저조할 뿐 제주시내의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 가격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토지는 거래가 뜸할 뿐 가격이 내려갈 기색은 없어 보인다.  

거품 땅값의 좋은 본보기가 제주시 중심가에서 30㎞ 이상 떨어진 구좌읍 월정리 해변이다. 카페촌으로 서울에도 잘 알려진 이곳엔 평당 100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4개의 영어학교와 오설록 신화역사공원이 몰려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서리 일대 마을 땅값도 평당 300만~400만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다보니 농어촌 사람들은 과수원 같은 농지라도 ‘평당100만 원’이란 땅값 관념이 박혀버릴 지경이다.

1000 평의 재래식 감귤 밭을 가진 농부를 생각해보자. 이 밭에서 수확하는 밀감의 조(粗)수입은 가격이 좋은 해일지라도 1000만 원을 넘기 힘들다. 비료 농약 일당이 포함된 액수다. 지가로 따지면 10억 원의 자산에서 연간 1%의 수익도 생기지 않는다. 공시지가의 상승으로 해마다 재산세만 올라간다. 손쉽게 농협에서 돈을 빌려 쓰게 되는 이유다. 이게 다른 수입이 없는 많은 감귤농가의 딜레마다.      

이런 부동산값 폭등이 근거 없는 거품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황도 있다. 작년인가, JDC와 남정그룹이 제주도의 허파와 같은 곶자왈에 조성한 단독 콘도 다섯 채가 공모 수 시간 만에 1채당 약 200억 원에 팔려나갔다. 구매인은 모두 홍콩인이었다고 한다. 홍콩과 중국의 부자에게 제주도가 이미 노출된 것이다.

제주도 토박이 주민들은 이런 일이 옆 동네서 일어나는 것을 보며 산다. 제주도의 큰 가치는 청정 자연환경이다. 유커는 물론 호텔도 관광업자도 면세점도 건축업자도 청정 자연 환경의 덕택을 입으며 돈을 번다. 그들은 자연을 소비하고 별로 복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농어촌 주민들은 나무를 가꾸고 곡식을 심으며 자연을 돌보지만 소득은 올라가지 않는다.

GRDP(지역총소득)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밑바닥에서 제주환경을 가꾸는 농어촌 주민들의 개별소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게 청정 환경을 외치는 지방정부 공직자들이 깊이 고민할 일이다.      

상당한 냉각기간을 거치겠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은 다시 제주를 찾을 것이며,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중국인들은 제주도에 다양한 관심은 쏟을 것이다. 당장 세수를 늘리고 눈에 띄는 전시행정을 보여주기 위해 끝없이 시설물과 리조트 호텔을 새로 지으며 아름다운 경관을 허물어갈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시설을 보기 좋게 개수하여 쓰고, 농어촌 주민들이 관광산업에 참여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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