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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오른쪽)이 지난 13일 경북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본부에서 열리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한 이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본관 건물로 들어가다 노조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다./뉴스1 © News1

지난주 '기습 이사회'에서의 공사 일시중단 결정으로 탈(脫)원전 논란의 한복판에 선 한국수력원자력이 향후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영구중단을 반대하는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기조에 원전 운영사인 공기업이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정부는 공론화 전에는 영구중단 여부에 대한 정부의 결론이 없는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수원의 이런 입장에 대해 평가를 유보했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17일 기자들과의 간담회를 자청해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중단 결정을 둘러싼 갈등과 관련해 한수원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 사장은 "한수원 입장에서 신고리 5·6호기에 1조6000억원을 투자했는데 건설이 취소되면 피해가 크니 경영진의 입장에선 계속 짓는 게 바람직하다"며 "공사 영구중단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진'의 입장에서 단순한 투자 손실을 이유로 대긴 했지만, 정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공기업 수장이 정부 정책과 배치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이 사장은 이어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었듯이 우리 국민들도 원전 안전성에 대한 걱정이 크다"며 "공론화 기간 동안 설비개선 노력, 충분한 자료 제공 등으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조만간 구성될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시민배심원단을 꾸리고 3개월간의 공론화를 거쳐 신고리 5·6호기의 영구중단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한수원은 이 공론화 과정에서 공사 재개 결정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등 탈원전 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취임 후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선 '공론화를 통한 중단 여부 결정'이라는 방법을 택하긴 했으나 새정부의 탈원전 기조는 명확히 한 상태다. 

이런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수원이 '기습 이사회'까지 열어가며 공론화 기간 중 공사 일시중단을 의결한 점에 비춰봐도 언뜻 '영구중단 반대' 입장은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선 우선 이 사장이 밝힌 대로 지금 상태에서 공사를 영구 중단할 경우 한수원이 입게 될 막대한 피해를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정률 29%의 신고리 5·6호기에는 이미 1조6000억원이 투입된 데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건설 백지화로 결론이 나면 시공사 보상비용 등으로 총 2조6000억원을 넘어서는 매몰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한수원이라는 공기업 자체가 원전 운영을 존립 근거로 하는 만큼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원전 운영사가 탈원전 정책의 선봉에 서는 것은 '자기 부정'일 수 있어서다. 

특히 수십 년간 원전을 지어오면서 효율적이고 안전한 원전 기술력을 쌓은 끝에 세계 4위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자부심이 상당한 한수원으로는 원전을 '인류의 재앙'으로 우려하는 분위기에 상처를 받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사측뿐 아니라 한수원 노조측과도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이미 한수원 노조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반대하며 대정부 투쟁에 돌입했다.

최근 원전 건설 중단과 관련한 찬반 여론이 팽팽해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가 어떤 식으로 결론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한수원의 '반기'에 힘을 실어줬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해 '중단해야 한다'는 응답이 41%로, '계속해야 한다'는 응답(37%)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앞서 이 사장은 지난 13일 이사회 무산 과정에서 건설 중단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한수원은 언제나 주민들 편에 서서 주민들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당시 이 발언을 두고 주민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의례적인 언급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영구중단에 반대하면서 뜻을 분명히 한 셈이 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한수원의 '영구중단 반대'를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을 뿐 정부가 아직 영구중단에 대해 결론을 내린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반기' 여부가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공론화 과정에서 영구중단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은 자체 이사회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한 한수원의 입장"이라며 "영구중단 여부에 대한 결론을 갖고 있지 않은 정부로서 한수원의 입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청와내 내부 회의에서 "건설 중단을 찬성 또는 반대한다는 입장은 없다. 공론화 결과를 따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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