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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래요?"

회사원 최모씨(47)는 지난해 7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시원하게 ㅎㅋ'라는 아이디의 한 여성에게 접근했다.

최씨의 제안에 여성은 "뭐하고 놀아요"라고 물었다. 최씨가 "그쪽에서 말해봐요"라고 요구하자 여성은 "한칸"이라며 "술은 있구요?"라고 되물었다. 최씨는 "네"라고 대답했다.

'ㅎㅋ'는 한칸의 자음으로 '술'과 함께 필로폰을 지칭하는 은어로 쓰인다. 최씨가 무엇을 하고 놀지 여성에게 답변을 요구한 것은 여성의 아이디 'ㅎㅋ'이 필로폰을 의미하는 한칸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여성은 다름아닌 경찰이었다.  

최씨는 여성에게 비밀이 보장되는 다른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연락을 하자고 한 뒤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그는 지난해 7월24일 약속한 장소에서 먼저 마약을 투약했고 곧 들이닥친 경찰에게 검거됐다.

마약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1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은 최씨는 항소했다. 경찰의 함정수사로 마약투약을 하게 됐다는 게 항소 이유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씨의 형을 1년6개월에서 1년으로 감형했을 뿐 경찰의 함정수사를 위법으로 보지 않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4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지난 18일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 대해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범의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 대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행을 유발하게 하는 것은 위법이다"면서도 "최씨의 범행에 관련해서 수사기관이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심리적 압박을 가하여 범행을 저지르게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이 최씨를 상대로 범행을 부탁했을 뿐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함정수사가 최씨가 이미 범의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기회만 제공한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피유인자와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동정심이나 감정에 호소하거나, 금전적·심리적 압박이나 위협을 가하거나, 거절하기 힘든 유혹을 하는 등 과도하게 개입하는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는 위법이다. 반면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고 단순히 수차례 범행을 부탁한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합법이다.

재판부는 경찰이 최씨에게 필로폰을 적극적으로 구해올 것을 요구하거나 구해오면 성관계를 하겠다고 암시하는 등 범의를 유발하지 않았다고 봤다.

결정적으로 최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여성으로 위장한 경찰관과 만나기로 한 시간에 앞서 소지하고 있던 필로폰을 스스로 투약했다. 상대방과의 만남과 관계 없이 마약투약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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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의 '2017년 상반기 마약류 사범 단속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인터넷, SNS 등을 통한 마약범죄가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2년 86명이었던 인터넷 등 이용 마약류 사범은 2013년 459명, 2014년 800명, 2015년 969명, 2016년 721명으로 늘어났다. 올해 들어서도 6월까지 721명이 검거됐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536명이 검거된 것과 비교하면 185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마약사범을 검거하기 위한 경찰의 수사기법도 인터넷과 SNS 등을 활용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마약범죄가 늘어나는 추세라서 마약소지범이나 판매범, 투약자와 접촉하기 위해 인터넷, SNS 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범죄 유형의 변화에 따라서 경찰의 수사방식도 그에 맞춰서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랜덤채팅 어플을 이용한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도 그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의 경우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한 합법적 방법"이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본다면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회제공형 함정수사와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경우도 있다"며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필요한 기법이긴 하지만 신중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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