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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식행사 마저 유통기업 부담에 '울상'…"마케팅마저 위축"

대형 유통기업 "가뜩이나 업황 안 좋은데 규제만 잔뜩 늘어"
학계 "이전보다 규제강도 높아", 오프라인에 규제 집중 불만도

[편집자주]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공정거래위원회가 13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납품업체 종업원의 인건비를 유통사와 납품사가 분담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을 내놓으면서 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장기적인 내수침체와 이로 인한 소비감소로 가뜩이나 유통분야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다 이번에 새롭게 가해지는 규제로 전반적인 비용증가마저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대기업 관계자는 "내수침체는 여전하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여파 등으로 업황전체가 좋지 않다"며 "최저임금도 오른 데다 인건비 부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판촉비 공동부담, 마케팅 위축만 불러올까 우려

공정위가 이날 발표한 규제안에 따라 납품업체가 주로 부담해 온 대형마트, 백화점 등의 판촉행사 비용을 이르면 내년부터는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 마트 시식행사, 백화점의 이벤트성 홍보행사에 따른 매출 증가 이익은 유통사와 납품사가 함께 나눴지만 정작 인건비는 납품사가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렇게 되면 비용증가를 우려한 유통사가 당분간 각종 시식, 이벤트 행사를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시식행사의 경우 판촉을 위해 해당 식품의 납품사 요청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유통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비용이 증가하게 되니 납품사의 요청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 A사가 20개 점포에서 20일간 와인 시음행사를 실시하면서 50개 납품업체로부터 종업원 100명을 파견 받아 하루 8시간씩 일하게 했을 경우를 가정하면 총 1억2800만원의 인건비가 소요된다.

이전까지는 제품 판촉을 원한 납품업체가 인건비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이를 마트 측에서도 부담하도록 대규모 유통업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이다.

와인시음행사로 얻게 될 대형마트와 납품업체의 예상이익이 같을 것으로 추정될 경우 절반인 6400만원은 마트 측이 부담해야 한다.

식품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체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한 식품제조사 관계자는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그동안 나가던 인건비를 줄일 수 있게 돼 어쨌든 긍정적"이라며 "업계의 낮은 영업이익률도 다소 올라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납품 업체 종업원이 정규직 사원인 경우 인건비 지급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식품업체 정규직 직원이 파견나가 일을 할 경우 마트 측이 인건비를 어떻게 지급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백화점 식품관에서 ‘참치 해체 쇼’와 함께 ‘무료시식’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2014.4.9/뉴스1
한 백화점 식품관에서 ‘참치 해체 쇼’와 함께 ‘무료시식’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2014.4.9/뉴스1

◇학계 "이전보다 규제강도 높아"…업계 "오프라인만 지나치게 규제" 불만 

이번 개선안은 대형유통사가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의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면 이르면 내년부터 3배로 배상해야 하는 안도 포함됐다. 과징금 기준 금액은 위반금액의 30~70%에서 60~140%로 2배 인상하도록 올 10월까지 고시를 개정하기로 했다.

또 최저임금 등 공급원가가 변동되면 유통업체에게 납품가격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표준계약서에 마련해 납품업체의 원가부담을 경감해주기로 했다.

롯데월드몰, 신세계스타필드, 신세계프리미엄아울렛 등 입점업체의 매출에 따라 정률제로 임차료를 받는 등 사실상 유통업을 영위하면서도 부동산임대업으로 분류돼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으로는 이러한 복합몰과 아울렛도 대규모유통업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한 유통대기업 임원은 "요즘 유통 업종 중 온라인몰을 제외하고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은 모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규제가 오프라인 업종에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는 것 같아 불만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 온라인 관련 대책이 아예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간 백화점에만 한정됐던 판매수수료 공개대상을 연말까지 대형마트와 온라인몰로도 확대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분야별 불공정거래 심사지침을 온라인유통업체와 중간유통업체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다.

중간유통업체의 경우 납품업체로부터 상품을 공급받아 대형유통업체에게 납품하는 도매상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납품업체에게 비용을 전가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사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아울러 공정위는 판매분만 매입해 재고를 납품사에 떠넘기는 판매분 매입 관행을 탈법행위로 규정해 규제하고 내년에 TV홈쇼핑과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판촉관행을 중점 개선 분야로 선정해 거래실태를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이정희 중소기업학회장 겸 전 한국유통학회장은 "공정위의 대책 방향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불공정 거래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며 "역대 정부와 비교할 때 정책 강도는 확실히 강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회장은 "기업들의 경영 위축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기업들도 이미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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