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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는 것이 남는 장사…4대 잇는 30대 여사장의 비결

[윤석민의 팩토리]

[편집자주]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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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는 장사가 손해 아닌 덕으로 돌아오더라.” 김래원 대표가 4대째 가업을 잇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 답변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변혁의 길목에 서 있다. 부풀려 말하면 현재는 세대·시대의 변화도 뛰어넘는 엄청난 패러다임 체인지의 한가운데다. 한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아온 오랜 노포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전통의 맛 고수냐 세대 따라 변하는 혀끝에 맞추느냐. 물론 정답은 없다. 김 대표 자매가 이끄는 사리원도 그 중심지 중 한 곳이다. 그것도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평양)냉면이 주종목이다.

기자 집안만 해도 서울 오장동 근처는 쳐다도 안 본다. 평안도 출신인 선친의 기준이 냉면을 정의한다. 이른바 ‘평냉부심(평양냉면자부심)’에 고구마 전분 면은 애들이나 먹는 쫄면이거나 그저 비빔국수일 뿐이다. 자연 의정부로 시작되는 평냉 족보를 꿰고 그 방계만 찾는다. 단, 지방 근무중 찾은 한 곳만이 예외다. 부친 생전 ‘인증’도 받았다. 6.25가 한창이던 1951년 대전에서 1호 영업 허가로 문을 연 사리원면옥이다. 충청권 공식 1호 식당격인 대표맛집이다.  

무더위가 한참이던 올여름. 회사 옆 종각 ‘식객촌’에서 그 이름을 발견했을 때 청량감은 한줄기 소나기 같았다. 고이는 침샘을 못 이겨 가게에 들어섰다. 헌데 분위기는 냉면집 기대와 사뭇 달랐다. 탁자위 행거에 걸린 샴페인잔은 생뚱맞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사리원이 변했다. 궁금증은 풀어야 기자다. 주인을 만나 이유를 들어야 했다.

김래원 사리원 서울 종로 식객촌점 대표. © News1
김래원 사리원 서울 종로 식객촌점 대표. © News1

67년 연혁의 노포인데 4대째 30대 초반 김 대표는 다소 의외였다. 4대면 통상 80년이상을 봐야 한다. 대전본점의 언니(김래현 대표) 역시 아직 30대라니 빠른 대물림이 궁금했다. 부모의 뜻밖 사고와 타계가 자매의 이른 등판을 불렀다 한다. 전공인 음악 학업을 접어야 했다는 김 대표에게 “냉면 철학은 있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알량한 ‘냉부심’의 발동이었다. 김대표는 태어나 자라나며 봐온 것이라 “(가업을) 물 흐르듯 잇고 있다”고 답했다. 와인잔이 엉뚱하다고  또 시비를 걸었다. 인테리어를 현대화하고 어정쩡한 서구문물 좀 들여놨다고 변화냐는 나름의 지적이었다. 다양한 손님의 요구에 대한 배려 정도로 이해해달라는 답변이다. 조만간 대전지역 도가와 협업한 전통주(사임주)도 메뉴에 넣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어쩜 냉면집은 이래야 한다는 기자의 고지식함일 수 있다. 전통 노포의 강점이 퇴색할까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사실 올여름 냉면의 절벽 위기를 절감했다. 부친도 즐겨 찾았던 한 단골집을 가면 귀를 열지 않아도 늘 주변이 익숙한 억양으로 넘쳐나곤 했다. “내래 어카갔니” “아새끼래” 등등 이북 사투리들이다. 그곳에서는 고추가루도 평안도 원어인 “땡가지 가루”로 통했다. 그 정겨운 웅성거림이 해가 가며 줄어들고 있음을 느껴왔던 터다. 그러다 이번 여름 방문에서 문득 정막감을 느꼈다. 분명 손님들은 붐볐는데 귀를 아무리 쫑긋 세워봐도 그 소리들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냉면을 먹다 울컥할 뻔했다. 상실감은 “분단이 너무 오래 갔군”하는 한탄까지 이어졌다.

충성스런 열성고객의 퇴진은 곧 냉면집의 위기다. 특히 평양냉면은 밍밍한 맛에 첫 방문서 단골 삼기가 절대 불가인 종목이다. 김래원 대표에게 두루두루 해법을 물었다. 4대를 내려오려면 전통의 맛 고수 외 저마다의 비결이 있을 듯싶어서다.

2대 옥인숙 대표와 옛 사리원 건물. 늘 베풀고 퍼주기를 아끼지 않던 할머니 옥씨는 김대표의 롤모델이다© News1
2대 옥인숙 대표와 옛 사리원 건물. 늘 베풀고 퍼주기를 아끼지 않던 할머니 옥씨는 김대표의 롤모델이다© News1

김 대표는 주저 없이 ‘퍼주는 장사’를 꼽았다. 동란의 어지러운 시국에 개업해 하나라도 더 퍼주고 베풀던 증조부모를 위시한 선대의 손님 접대가 덕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4대를 이어온 주인처럼 선친 손에 이끌려 왔던 손님이 부모가 되어 자식을 끌고 다시 찾는 대물림의 선순환이다. 비록 선대가 사리원 상호에 고향을 그리며 찾은 데 반해 요즘 세대가 ‘사리가 으뜸’, 아니면 아예 아이스크림 서리원 플레이버(31 flavor)에 빗댄 이름 정도로 안다 한들 다를 것이 없다. 김대표는 "맛있는 식사 한끼에 손님들이 추억을 떠올릴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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