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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인멸' KAI 임원 구속영장 또 기각에 檢 "수긍 어려워"

법원 "타인 형사사건 증거 인멸했다는 점 충분히 소명 안돼"
검찰 "증거인멸 교사죄는 자기 사건에 대한 경우도 성립"

[편집자주]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 서울사무소. /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직원에게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KAI 상무급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됐다.

KAI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현재까지 청구한 5건의 구속영장 가운데 3건이 기각되자 검찰은 "영장 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과 검찰이 다시 한 번 충돌하는 양상이다.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 판사는 13일 오후 10시56분쯤 증거인멸 교사 혐의 혐의를 받고 있는 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강 판사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였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박씨가 받고 있는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서 증거를 없애거나 위조, 위조한 증거를 사용하는 범죄다. 자신의 범행에 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 없다.

즉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가 증거인멸교사인데 박씨로부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를 받은 실무진이 증거인멸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실무진 본인의 형사사건에 대해 증거를 인멸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법리적인 이유로 박씨에게 증거인멸교사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는 것이 강 판사의 판단이다.

검찰은 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즉각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14일 오전 0시12분 기자들에게 입장문을 보내 "증거인멸죄는 자기가 아닌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 성립되는 반면, 증거인멸 교사죄는 인멸 대상인 증거가 자기가 처벌받을 형사사건에 대한 경우에도 성립된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증거인멸죄가 아니라 증거인멸 교사죄"라며 "영장 기각 사유를 보면 박씨로부터 교사받은 실무자들도 분식회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자들이므로 증거인멸 교사혐의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인멸된 증거는 경영진과 회계담당자들의 분식회계에 대한 것인데, 이 사건 피의자 박모씨는 재무제표 작성을 담당하는 회계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어 분식회계로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없는 개발부서 실무직원들에게 직무상 상하관계를 악용해 검찰에 제출할 서류 중 경영진과 회계담당자들의 분식회계 혐의와 직결되는 중요 증거서류를 직접 골라내 세절기에 세절하도록 교사한 것"이라며 "박씨에게는 증거인멸 교사죄가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수사 단계에서의 증거인멸 우려를 구속의 주된 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형사소송법의 취지를 감안할 때 영장 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날개가 동체에 고정된 '고정익' 항공기 분야 개발사업 담당 임원으로 검찰이 분식회계 조사에 들어가자 관련된 중요 증거를 골라낸 다음 직원들에게 이를 파쇄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씨가 파쇄하도록 지시한 문건은 KAI의 분식회계를 입증할 핵심 문건으로, 하성용 전 사장에게 보고되는 문건인 것으로 보고있다.

(뉴스1 DB) © News1
(뉴스1 DB) © News1


지난 7월14일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인 KAI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하며 강제 수사에 돌입한 이후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총 5번이다. 이 중 2차례 영장이 발부되고 3차례 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이 KAI 관련 세번째, 첫 KAI의 현직 간부급 인사인 이모 KAI 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8일 기각하자 검찰은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국정농단이나 적폐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의 사명을 수행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반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전담법관이 바뀌어서 발부 여부나 결과가 달라졌다는 등의 서울중앙지검 측의 발언은 심히 유감스럽다"며 검찰과 법원이 공방을 벌였다.

이후 100억원대 원가를 부풀린 혐의를 받는 공모 본부장에 대해 법원은 "피의자의 범행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나 이날 또다시 현직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검찰이 즉각 반발하면서 법원과 검찰의 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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