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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편의 오디오파일] 스피커, 거실의 음향 오브제가 되다

[편집자주]

‘Aero 500’의 다양한 마감. © News1
‘Aero 500’의 다양한 마감. © News1
 
세계 최초로 청동(bronze)을 몸통으로 쓴 스피커가 국내에서 탄생했다. 청동은 구리합금 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사용돼 왔던 구리-주석계 합금으로, 강도가 높고 녹이 잘 생기지 않는 특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한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이 바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1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J&A어쿠스틱스 시청실. 안민구 대표가 최근 완성시킨 청동 인클로저 스피커 ‘에어로 500(Aero 500)’을 직접 시연했다. 안 대표는 모토로라 미국 본사에서 스마트폰 관련 제품개발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뒤 2012년 한국에 돌아와 스피커 제작에 뛰어들었고 올 초 J&A어쿠스틱스를 설립했다. 사명 ‘J&A’는 공동 설립자인 장수홍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와 본인의 이니셜에서 따 왔다.

스피커 인클로저는 MDF(중밀도 섬유 판재)와 합판, 천연목재, 플라스틱, 알루미늄, 카본 등 다양한 소재가 쓰이지만 청동을 소재로 한 것은 이번 ‘Aero 500’이 처음이다. 안 대표는 “스피커 장식용이나 턴테이블의 암으로 청동이 쓰여진 적은 있지만 스피커 인클로저로는 ‘Aero 500’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나무 재질은 ‘501’, 세라믹 재질은 ‘502’ 이런 식으로 라인업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청동을 인클로저로 쓰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우선 청동을 녹여 주물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포가 생겨 식은 후에도 표면에 기포 자국이 생기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업체도 바꿔보고 주물온도도 다르게 해본 끝에 현재의 고품질 청동 인클로저가 나올 수 있었다. 주물작업 후에는 표면 절삭작업을 또 거쳐야 했다.
‘Aero 500’ 몸통 모습. © News1
‘Aero 500’ 몸통 모습. © News1

 외관은 ‘Aero’(항공의, 항공학의)라는 모델명이 뜻하는 그대로 날렵한 유선형 스타일이다. 최대 직경은 27cm인데 뒤로 갈수록 얇아져 끝을 뾰족하게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단지 소리를 내는 것만이 아닌, 인테리어와 매칭까지 고려한 디자인이 멋지다. 미술이나 예술계에서 말하는 일종의 ‘오브제(objet)’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Aero 500’ 스탠드 하단 모습. © News1
‘Aero 500’ 스탠드 하단 모습. © News1

뒤쪽 하단에는 저역 보강을 위한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가 나있다. 밑에 달린 알루미늄 스탠드와는 일체형. 스피커 케이블 연결을 위한 단자는 독일 문도르프(Mundorf) 제품으로 스탠드 아래 뒤쪽에 있다. 유닛은 모두 독일 아큐톤(Accuton)의 세라믹 제품으로, 고역을 담당하는 트위터와 중저역을 담당하는 미드우퍼로 구성됐다. 스탠드 포함 전체 무게는 50kg, 주파수 응답특성은 45Hz~30kHz, 감도는 88dB, 임피던스는 6~8옴, 크로스오버는 2.5kHz를 보인다. 가격은 부가세 포함 1540만원.

그러면 왜 청동 인클로저에 아큐톤 유닛을 썼을까. 안 대표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청동을 쓴 이유는.

▶스피커도 단지 소리를 잘 내는 것만이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가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정작 스피커는 왜 딱딱하고 네모난 모양이어야 할까 의문스럽기도 했다. 아큐톤 유닛을 나무 인클로저에 집어넣으니 아큐톤 유닛 자체의 성질이 변했다. 그래서 비철금속으로 인클로저를 만들기로 했는데, 알루미늄은 청동에 비해 비중이 3분의 1밖에 안돼 진동을 잡아주기 힘들었다. 그래서 청동을 선택했다. 에밀레종이 떠오르는 정서적인 측면도 있었다. 

-아큐톤 유닛을 쓴 이유는

▶스캔스픽, 스카닝 등 여러 유닛을 테스트해봤는데 아큐톤 유닛의 해상도가 가장 높고 섬세했다. 제가 스마트폰을 개발했던 사람이라 디지털적이고 공학적인 마인드에서 접근해봐도 아큐톤 유닛은 매력적이었다.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아큐톤 유닛의 차가운 이미지와 물성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인클로저를 에어로 다이내믹 형태로 만들고 크로스오버 튜닝을 거치면서 좀더 인간적이고 온기가 감도는 소리를 얻을 수 있었다.
 ‘Aero 500’ 시청 현장. © News1
 ‘Aero 500’ 시청 현장. © News1

‘Aero 500’의 소리를 들어봤다. 앰프는 올닉(Allnic)의 진공관 인티앰프 ’T-2000 MK2’로, KT150 진공관을 채널당 2개씩 푸쉬풀로 구동시켜 100W 출력을 낸다. 소스기기는 오렌더(Aurrender)의 DAC 내장 네트워크 플레이어 겸 뮤직서버 ‘A10’을 동원했다. 두 제품 모두 국산이다.

블라드미르 아쉬케나지와 아다 메이니크가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비올라 소나타’에서는 울림이 풍부하고 잘림이 명확한 소리를 들려준다. 저역은 충분히 양감있게 떨어지고 재생에 있어 일체의 잡맛이 없다. 내부 정재파와 외부 회절 현상을 없앤 유선형 인클로저 디자인과 진동을 제거한 단단하고 무거운 청동 재질 덕분으로 보인다. 각 악기들의 3차원적 이미지와 입체적인 사운드스테이지도 일품이다.

안네 소피 폰 오터가 부른 ‘베이비 플레이즈 어라운드(Baby Plays Around)’에서는 높은 정숙도를 배경으로 오터의 호흡과 기척이 생생히 느껴진다. 아큐톤 유닛에서 우려했던 차갑거나 경질의 소리는 절대 아니며 오히려 온기마저 살짝 느껴진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는 사운드스테이지가 좌우로, 앞뒤로, 위아래로 잘 펼쳐진다. 고역은 충분히 위로 잘 뻗고 있다. 음들이 여럿 겹쳤을 때에도 결코 혼탁해지는 법이 없다. 튜닝의 결과인지 중역대 이하 음들의 양감이 조금은 두드러진다.

마지막으로 들어본 안드리스 넬슨스 지휘,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4악장에서는 팀파니의 호방한 타격감과 무대의 안길이를 훌륭하게 표현해준다. 계속해서 음들이 섬세하게 그리고 결이 고운 상태로 나왔다가 스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목관의 부드러운 고역이 그야말로 감칠맛나게 들린다. 여린 음들의 연주에서도 분명하게 자기 소리를 내는 모습이 대단하다.  

‘Aero 500’은 유선형 청동 인클로저라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소재, 이미 검증받은 아큐톤 세라믹 유닛이 절묘하게 만난 스피커로 보인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음 튜닝과 부품 선택도 매우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 하지만 무엇보다 미니멀하고 시크한 디자인과 빼어난 소리를 동시에 원하는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음향 오브제’로 거실에 두면 꽤 멋질 듯하다. 맞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런 스피커가 나올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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