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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 안전성규제 '세계 최고'?…식약처 해명 잇단 무리수

WHO·FDA 기준 언급했지만 해당기관은 상반된 견해 내놔
화학물질 문제 수십년 전부터 지적…땜질식 처방이 논란 자초

[편집자주]

© News1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안전성 이슈와 관련해 사실과 어긋난 해명을 자처하고 나서 논란을 빚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전세계 최고수준의 규제기관에 견줘 국내 생리대 규제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국제보건기구(WHO)의 데이터를 근거로 생리대 접착제가 안전하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정작 뉴스1이 해당 기관과 인터뷰한 결과 식약처와 상반된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식약처는 생리대 논란을 계기로 안전관리의 허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기존 정책의 보완에 나서기는커녕 잘못된 해명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며 소비자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식약처, FDA·WHO 등 견해와 상충

FDA는 최근 뉴스1과의 이메일·전화 인터뷰에서 국내 기관인 식약처의 입장과 배치된 견해를 내놨다.

FDA 측은 "업체들에 생리대 화학잔류물 수준을 모니터링하도록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학잔류물은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제품에 남아있는 화학물질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휘발성이 높은 화학물질을 뜻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이 포함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휘발성유기화합물보다 상위개념의 화학물질에 대해 FDA의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지난달 23일 보도자료를 내고 "전 세계적으로 생리대에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관리기준이 마련된 나라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FDA가 이미 생리대 휘발성유기화합물 관련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식약처가 이를 부인한 모양새가 돼 버렸다.

앞서 식약처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기관(IARC)의 견해와 다른 주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빚었다.

IARC는 인체에 암을 일으킬 것으로 추정되는 물질 등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데, 연구대상에 포함된 스티렌부타디엔공중합체(SBC)는 인체 발암성을 정할 수 없는 '그룹 3'로 분류됐다.

식약처는 IARC 데이터를 근거로 국내 생리대 접착제로 사용된 스티렌부타디엔공중합체가 발암물질이 아니라며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식약처는 IARC가 해당 물질을 연구한 끝에 발암 물질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듯한 뜻을 전했다.

하지만 뉴스1이 IARC 측에 질의한 결과 "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식약처와 상충된 의견을 내놨다. '그룹 3'로 분류된 데이터는 30년 전 것으로 아직 발암물질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으며, 해당 물질을 발암성 물질로 분류한 유럽화학물질청(ECHA) 데이터가 최신이라는 게 IARC 측 설명이다.

IARC는 인체에 암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는 물질을 '그룹 4'로 따로 분류하고 있지만, 식약처가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셈이다.

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식약청 브리핑실에서 열린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 2차 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김대철 식약처 바이오생약심사부 부장이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17.9.4/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국내 생리대 규제 자부?…FDA 비해 '엉성'

되레 식약처는 사실무근인 주장을 내세우며 국내 생리대 규제를 자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식약처 측이 "의료제품 규제 선진국인 미국은 물론 일본, 유럽에 비해서도 식약처의 생리대 규제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식약처와 FDA의 생리대 규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식약처 고시에 따르면 생리대 업체는 제품에 신물질이나 신소재 등이 사용될 경우 세포·생식·면역독성 자료 등 안전성·유효성 심사자료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발암성 시험자료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으며, 2개국 이상 판매되는 생리대 제품도 독성시험자료를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팔리는 생리대는 △포름알데히드 △형광증백제 △산 및 알칼리 △색소 등 9가지 품질검사를 거치고 있다는 게 식약처 측 설명이다.

반면 FDA는 생리대 시판에 앞서 제품에 사용된 구체적인 화학물질 정보는 물론 각종 독성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FDA에 따르면 생리대 업체들은 제품에 사용된 모든 첨가제·가공제·방향제·탈취제의 구체적인 화학물질 정보와 화학물질의 양(생리대 1개당 µg)을 정리해 표 형식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에 더해 FDA는 생체적합성 평가에 따라 생리대의 유전·만성독성과 발암성, 과민성 등 화학적 독성은 물론 생체에 반응할 수 있는 제품의 물리적 특성 등을 포함한 자료도 요구하고 있다. 신체노출 정도와 빈도, 기간도 고려된다.

식약처와 달리 FDA는 국제암연구기관(IARC)과 미국 환경보호청(EPA) 등 발암성 데이터를 생리대 안전성 판단의 기준으로 참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땜질식 대처 방식…수십년째 반복

전문가들은 생리대 안전성 논란에 대한 식약처의 대처방식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생리대로 인해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유해물질에 노출되고 건강위험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진작 평가했어야 하는 부분"이라며 "오히려 생리대 안전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한 연구팀의 연구조건에 흠집을 잡으며 기존의 정책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강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그보다는 학계와 협업해 상온·고온 등 다양한 조건에서 생리대 유해물질 관련 실험을 진행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국민에게 더욱 신뢰를 심어줄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20여년 전부터 소비자들이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지만, 정부가 제대로 된 규제를 마련하지 않은 채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생리대의 경우 1971년 국내에 첫 제품이 시판된 이후 47년째 판매되고 있다.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화학물질 안전성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정부가 해당 제품의 안전규제만 땜질식으로 보완하는 식의 대처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유해 화학물질로 인한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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