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50명 알바 울린 평창동계올림픽 '하청 피라미드'의 민낯

"두 달 기다렸는데"…'강제 해고' 알바생 '노동청' 진정
조직위·하청업체 "책임 없다"…"간접고용 관행 없애야"

[편집자주]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을 불과 닷새 앞두고 간접고용의 고질적인 병폐인 '피라미드식 하청' 문제에 휩싸였다.

평창올림픽 운영을 위해 채용된 아르바이트생 50여명이 합격 통보를 받고도 2달 동안 근무를 하지 못하다가 일제히 강제해고 당했고, 한 아르바이트생이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다.

하지만 '하청업체와 근로자의 고용이나 임금문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하청업체의 책임 떠넘기기 속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해고된 아르바이트생의 몫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림픽이나 대규모 국가행사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하청-재하청 문제'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자칫하면 대규모 임금체납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채용 2달 만에…'근무' 미루던 업체, 돌연 강제해고

"너무 황당하고 억울해요. 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버텨왔는데…."

지난해 말 인터넷 구인사이트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장비운영 보조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이모씨(23·여)는 지난달 8일 경기도의 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오는 6일 증거자료를 모아 진정인 조사에 출석하기로 한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돌아온 것은 '해고 문자' 달랑 한 통뿐이었다"며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인터넷 구인사이트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아르바이트' 모집을 접한 이씨는 '3개월 숙식'이라는 조건에도 시급 8000원이라는 높은 수익과 흔히 접할 수 없는 '올림픽 일자리'를 기대하고 지원했다.

며칠 뒤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이씨는 업체의 요구에 따라 사진과 신분증, 개인정보 활용동의서까지 보냈지만 업체는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씨는 "전화 면접도 없이 합격했다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만 올림픽 현장에서 일 할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에 욕심이 났다"며 "하지만 근무시작일이었던 12월15일이 다가와도 업체는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인력이 아직 필요하지 않다'며 차일피일 근무시작을 미뤘다"고 전했다.

하지만 약속한 날짜가 다가와도 업무 안내는커녕 업체와 연락조차 닿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자 이씨는 수차례에 걸쳐 인사담당자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아도 '기다려 달라'는 답변뿐이었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이씨는 "몇 차례에 걸쳐 근무시작이 연기되는 동안 다른 일도 구할 수 없어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다"며 "업체는 1월15일부터 일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1월5일 일방적으로 합격이 취소됐다는 문자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씨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지난해 11월 '평창동계올림픽 장비운영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며 아르바이트생 50여명을 선발했다. 하지만 근무시작일을 한 달이나 미룬 업체는 최종 확정된 근무시작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채용을 취소했다.

이씨는 "평창동계올림픽 일자리만 기다리다가 다른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다"며 "올해부터 최저시급까지 오르는 바람에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쉽지 않아 최근에는 부모님과의 관계까지 멀어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평창동계올림픽 장비운영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던 이모씨(23·여)가 업체와 주고 받은 문자. 지난해 11월 중순 올림픽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됐다가 2개월 뒤 일방 해고 통보를 받은 이씨는 지난 8일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다.© News1
평창동계올림픽 장비운영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던 이모씨(23·여)가 업체와 주고 받은 문자. 지난해 11월 중순 올림픽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됐다가 2개월 뒤 일방 해고 통보를 받은 이씨는 지난 8일 노동청에 진정을 접수했다.© News1

◇올림픽 조직위·하청업체 "책임 없다"…피해는 알바 몫

이씨 등 아르바이트생 50여명을 고용한 A업체와 이 업체에 일감을 준 B대행사는 이구동성으로 "일감을 주기로 했던 올림픽 조직위가 계속해서 일정을 미루거나 대금을 줄이려고 했다"며 "원청이 작업지시를 내리지 않으니 아르바이트생을 어떻게 쓰겠느냐. 우리도 큰 피해를 봤다"고 해명했다.

A업체와 B대행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건의 발단은 원청사였던 대기업 C사에서 시작됐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입찰을 통해 용역을 받은 C사는 경기를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는 선수단의 장비를 옮길 아르바이트를 선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C사는 직접고용 대신 간접고용 방식을 선택했다. C사는 '장비 운영 보조업'을 D사로 내려보냈고 D사는 다시 B사에, B사는 A사에 일거리를 맡겼다. 이른바 하청에 재하청이 4차례에 걸쳐 피라미드 방식으로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계획이 틀어졌고, 피해는 고스란히 최하위 하청업체인 A사와 아르바이트생이 떠맡아야 했다.

중간 하청사인 B대행사 관계자는 "원청으로부터 내려받은 일을 A업체에 맡기고 작업하려고 했지만 올림픽 조직위가 자꾸 일정을 지연시켰다"며 "원청도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급하기로 한 임금을 줄이겠다는 말부터 '자원봉사자'를 쓰자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어떻게 근로를 시킬 수 있겠나"고 토로했다.

A업체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A업체 관계자는 50명에 달하는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한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상위 업체에서 일정을 계속 지연시키고 대금조차 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해고 통보를 했다"며 "우리도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로 채용한 직원들에게 줄 인건비도 받지 못했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영문도 모른 채 해고를 당한 아르바이트생들의 원성이 이어지자 현재 A업체는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인사담당자의 연락처까지 삭제한 상태다.

하청업체들은 "올림픽 조직위가 예산과 일정을 주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지만 올림픽 조직위는 '하청업체와 아르바이트생 간의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조직위는 올림픽을 운영만 할 뿐 용역업체나 하청업체와 근로자 간의 고용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다"며 "조직위가 직접고용한 근로자가 아닌 아르바이트생이나 단기 근로자의 임금도 조직위가 지급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 "채용내정자 해고도 불법"…간접고용 관행 근절해야

전문가들은 "근무를 시작하지 않은 합격자도 '채용내정자'의 신분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채용취소는 엄연한 불법'이라며 '채용을 취소한 업체는 해고된 아르바이트생에게 기대수익이나 휴업수당 혹은 해고예고수당을 제공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근로자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간접고용'의 병폐가 다시 불거졌다"고 지적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대규모 임금체불 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한솔 노무사는 "우리나라 판례는 채용내정자의 채용을 취소하는 것도 해고의 일종으로 본다"며 "적극적으로는 원래 근무를 시작하기로 했던 12월15일부터 1월5일까지 일을 했다면 벌어들일 수 있었던 '기대수익'만큼의 임금을 지급하거나 적어도 휴업수당(기대수익의 70% 상당) 혹은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고 해고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이씨 등 해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해야 할 주체는 최하위 하청업체인 A업체다. 아르바이트생들과 고용 관계를 맺은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최 노무사는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한 업체가 임금 지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까지 이어질 여지도 있다"고 보았다.

특히 최 노무사는 책임과 비용을 전가하는 '하청-재하청 관행'이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 행사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는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축제의 경우 이를 총괄하는 조직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용역이나 대행사가 고용한 근로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용역업체가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하거나 임금을 체납하더라도 조직위는 이에 대해 어떠한 법적 책임도 갖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최 노무사는 "결국 도급에 도급을 낳는 고질적인 고용문제가 올림픽 현장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로 대기업인 원청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근로자와 하청업체에게만 피해가 돌아가는 간접고용 문화가 적어도 국가적 행사에서만큼은 지양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당해고나 임금체납과 같은 어두운 면도 반복되고 있다"며 "조직위와 지자체는 생활임금 이상의 임금 제공, 엄격한 용역업체 검증 등 높은 수준의 입찰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이를 토대로 민간 용역업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