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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한라산 폭설과 지하수 고갈

[편집자주]

뉴스1 © News1
제주도가 전례 없는 폭설에 뒤덮인 며칠간 애월 해안가에서 지냈다. 30년 이상 택시를 몰았다는 운전기사가 “이렇게 눈이 해변 지역에까지 쌓인 적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4일 아침 영하의 날씨에 눈이 쏟아진 제주시내 교통은 엉망이었다. 평소 20분이면 갈 수 있는 제주공항까지 50분이 걸렸다. 바퀴에 체인을 감은 차량이 엉금엉금 기어갔고, 체인 없이 나왔던 자동차들은 미끄러지면서 차선을 가로막았다. 비행기 운항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건 다반사였다. 해발970m의 어리목코스 일대에 하루 눈이 40㎝이상 쏟아졌다.

문득 2010년 기상청이 “제주도의 겨울이 사라졌다”고‘ 발표했던 게 생각난다. 겨울이 사라지다니 말이 안 되는 얘기 같았는데 근거가 있었다.  

겨울 날씨가 되려면 기상학적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겨울을 결정하는 요인은 평균 기온이다. 평균 기온이 섭씨 5도 이하가 되는 날이 9일간 연속되어야 ‘겨울’이라는 계절 자격이 주어진다.  

제주지방기상청의 관측 자료에 따르면, 2000~2009년 동안 평균 기온이 섭씨 5도 이하로 연속 9일 이상 지속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없어졌다고 했던 것이다. 올해 찾아온 이상 한파로 제주도가 잃어버린 겨울을 되찾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한라산은 온통 하얗다. 주민이나 관광객들은 폭설로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고 경제적 피해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라산을 뒤덮은 눈은 제주 섬에 크게 반가운 현상이다. 그건 바로 눈이 곧 물자원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눈이 천천히 녹으면서 땅속으로 흘러들어가 지하수가 될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이렇게 눈 덮인 한라산을 보면서 지하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건 제주도 지하수 수위가 근래 걱정스러울 정도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가 지난해 제주도 전역 68곳의 지하수 수위를 관측한 결과 2007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저로 낮아졌다.  

얼마나 낮아져서 걱정일까. 지하수 수위가 재작년 관측했을 때보다 최대 11.59m 낮아졌고, 지난 10년 평균 수위보다 최대 30.33m 낮아졌다. 10년 전 지하수 관정을 뚫으면 물이 콸콸 쏟아지던 곳에서 지금은 20m 정도 더 뚫고 내려가야 지하수가 나온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지하수 수맥, 그러나 관측 수치를 보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문제가 제주도 땅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의 생명은 지하수다. 강이나 호수 같은 지표수가 없다. 수분을 즉각 흡수하는 현무암 지층이어서 제대로 된 저수지도 만들 수 없다. 그런데도 제주도가 푸른 숲과 초원으로 녹색 섬을 유지하는 것은 지하수 덕택이다. 주민 67만 명이 마시는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도원은 거의 지하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도에는 해안가이든 중산간이든 호텔과 숙박시설, 그리고 골프장 등 관광업소가 수없이 많다. 이들 업소는 상수도를 공급받기도 하지만 거의 관정을 땅속 깊이, 해수면 이하로 박아 지하수를 끌어올려 쓴다. 농업용수도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제주도에선 삼다수로 농사를 짓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겠는가. 그러나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삼다수도 파이프를 해수면 이하로 박아 그곳에 형성된 거대한 지하수 주머니에서 자연 정화된 담수를 끌어올려 페트병에 담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제주도의 생명 줄인 지하수의 수위가 낮아지는 것은 위기의 신호가 아닐까 싶다. 작년 제주도는 몹시 가물었다. 그래서 지하수 수위가 낮아졌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지하수위가 계속 낮아진 것은 경계할 현상이다.  

지하수 수위가 낮아진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지하수원인 강수량에 변화가 생겼던지, 그게 아니면 지하수가 함양되는 속도보다 뽑아내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두 가지 원인이 복합해서 생겨나는 현상일 수도 있다.  

지하수와 관련하여, 제주도가 직면할 문제는 인구증가와 기후변화다.

제주도 인구는 작년 말로 67만 명이 넘었다. 2010년 57만 명이었던 주민 수가 7년 사이 10만 명, 즉 18%가 늘었다. 최근 추세를 보면 매년 1만5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매일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약 3만 명이다. 이렇게 늘어나는 인구가 지하수 자원에 대한 강한 압박 요인이 될 것은 불문가지다. 기후변화가 제주도 지하수에 어떤 스트레스를 줄 것인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기후변화는 강수의 패턴과 강수량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기후변화로 가뭄이 빈발하고 강수량이 줄어든다면 지하수 함양에 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제주도는 풍부한 지하수로 물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수질 좋은 삼다수가 국내 생수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라산 밑에 있는 지하수는 쉽게 고갈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구증가와 기후변화는 지하수에 압박을 가할 것이다. 그 압박의 방식이 수량감소와 오염이다.

인간은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지혜를 갖고 있다. 한편 인간은 미래의 위험보다 현재의 편리함에 안주하는 성향을 가졌다. 예년에 없이 한라산을 뒤덮은 대설과 사상 최대로 낮아진 지하수 수위가 제주도 주민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뉴스1 고문> 

눈 덮인 한라산 © News1
눈 덮인 한라산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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