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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6년 롤러코스터…새정치로 뜨고 낙선으로 지다

2012년 대선 뛰어들었던 안철수, 정치 휴지기 돌입
작년 대통령·올해 서울시장 선거 잇단 패배 '아픔'

[편집자주]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전 대표.2018.4.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전 대표.2018.4.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바른미래당의 안철수 전 대표(56)가 12일 정치 휴지기 돌입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레이스에 뛰어들며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지 6년 만이다.

여의도에 처음 발을 디딜 당시 안 전 대표의 이력은 누구보다도 화려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에 해외 유수 대학의 학위를 가졌고, 컴퓨터 보안 업계를 선도한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카이스트 석좌교수 및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젊은이들의 대표적인 롤모델이자 국민 멘토로 꼽히던 안 전 대표는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개최, 자신의 사회적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했다. '안풍'(安風), '안철수 신드롬'의 시작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정치개혁 요구가 거세지면서 안 전 대표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직을 양보해 당선을 도왔다.

안 전 대표는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권력 정점에 도전하는 듯 했으나,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둘러싼 진통 끝에 스스로 후보 사퇴를 했다. 이에 '철수 정치'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이듬해 4월 서울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원내에 입성해서는 1년 가까이 독자 창당을 준비하다 2014년 3월 '김한길 민주당'과 통합하며 제1야당의 대표로 올라섰다.

같은 해 7·30 재·보궐 선거 패배 뒤 안 전 대표는 공동대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2015년 말에는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혁신 논쟁을 벌은 끝에 탈당해 2016년 초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6년 4·13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국민의당을 원내 3당으로 만들었지만 두달 뒤, 현재는 무죄로 판결이 나고 있는 '총선 홍보비 파동'이 불거지면서 공동대표직을 사퇴하게 됐다.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쳐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지난해 5·9 대선을 앞두고 의원직 사퇴 카드로 배수진을 친 안 전 대표는 유약한 이미지 탈피를 위해 '강철수' 면모를 보이며 한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지지율이 엇비슷해지는 '골든 크로스'를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TV토론 부진 등 탓에 문 후보(득표율 41.1%),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에 이어 3위(21.4%)를 차지하며 쓴잔을 마셨다.

이후 국민의당 당권에 도전, 2017년 8월 당 대표로 선출됐다. 같은 해 말 바른정당과의 합당 추진에 호남계 의원 중심의 분당 사태를 맞았고, 올해 2월 바른미래당 창당으로 합당 작업을 마무리했다.

지난 6·13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7년 전 자신이 후보직을 양보했던 박원순 후보는 물론 김문수 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쳐져 3위(19.6%)를 차지했다. 박 후보와 김 후보는 각각 52.8%, 23.3%를 득표했다. 바른미래당도 지방선거 참패를 겪었다.

새정치 열망에 힘입어 정계에 입문한 안 전 대표는 기존의 양당 구도를 깨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권에 있는 6년 동안 정치력이 높아졌다는 분석과 동시에 새정치 이미지는 깎아먹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후보로 등판한 굵직한 선거들에서의 연이은 패배가 정치 휴지기 돌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가 앞으로 모두 소진되다시피한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어떻게 채워, 어떤 시점에 복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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