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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졸·머슴살이에서 지금은 '회장' 김명환…출산장려금 최대 7500만원 왜?

"희망 잃으면 끝, 아이들이 결국 희망…사업, 돈 아닌 '신용'으로 하는 것"

[편집자주]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양천구 덕신하우징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양천구 덕신하우징 본사에서 뉴스1과 인터뷰 전 사진촬영에 임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아이를 출산한 직원에게 지원금을 주는 회사가 있다. 네 명을 낳으면 출산 장려금 75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서도 하지 않는 '통큰' 지원책을 내놓은 중소기업이 있다. 건축용 자재 데크플레이트 1위 업체 덕신하우징 얘기다.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67)의 아이 사랑은 '각별하다'고 표현해도 모자를 정도로 애틋하다.

"나는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소. 초졸 학력에 머슴살이도 했소. 그래도 기어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아 여기까지 왔소. 출산 장려금은 희망을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이오. 희망을 잃으면 끝이오. 아이들이 결국 희망이지요"

김 회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30일 양천구 신월동 덕신하우징 본사에서 김 회장과 마주 앉았다. 그의 인생 스토리는 자수성가형 기업인 답게 한 편의 드라마였다. 특히 인생을 살면서 얻은 '깨달음'을 실천에 옮긴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의 성공비결인 셈이다.  

◇ 고된 '머슴살이', 첫 '깨달음'…'적재적소' 효율성의 힘

김 회장은 1951년 1월 충남 홍성군 한 마을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이 한창이었다. 김 회장은 3남 3녀 중 넷째였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식솔은 늘었으나 식량은 한정됐다.

먼저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 젖을 물다가 동생이 태어나면 젖을 떼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젖을 뗀 아이들은 모닥불에 구운 보리를 먹었다. 형제 자매들은 갈비뼈 자국이 선명히 드러날 정도로 몸이 야위어갔다. 영양실조로 숨을 거둔 이들이 마을에서 속출했다.

"배가 고파서 환장할 일이었지. 좀 있는 사람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소. 희망과 기회를 기대하긴 힘든 현실이었소. 그래서 희망과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소."

김 회장이 돈을 번 후 남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선 것은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그는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만석꾼(논밭을 보유한 큰 부자를 의미) 밑으로 들어가 머슴살이를 했다. 그는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만석꾼 밑에서 농사를 배웠다. 시골 '촌구석'이라고 해도 만석꾼들은 역시 뭔가가 달랐다. 당시 농사를 짓는 이들은 흔히 적자에 시달렸다. 하지만 만석꾼은 매년 흑자가 났고 그 돈으로 조금씩 땅을 더 사들일 수 있었다. 

"가령 모내기 하는 사람 따로, 관리·감독하는 사람 따로 뒀소. 관리·감독 업무가 특히나 중요했소. 관리 감독관은 늘 못줄을 미리 준비해야 했소.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은 일렬로 옆으로 서서 못줄 눈금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모를 심소. 못줄이 끊어지면 일 자체가 안 되오. 못줄 사러 가는 동안 인부들은 그저 놀 수밖에 없지요. 일반 농부들은 못줄도 비싸니까 여유분을 가지고 다니지 않소. 그런데 이 만석꾼은 관리자들에게 항상 못줄을 여유롭게 챙기도록 했고 단 하루도 그냥 노는 날이 없었지요."

경영학에서 얘기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셈이다. 김 회장은 이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인력관리' 방법을 배운 셈이다. 

◇ 첫번째 '시련', 상경… 두번째 깨달음 '신용' 

김 회장은 주인집 신뢰를 얻어 관리·감독 업무를 했다. 머슴살이로 번 돈을 알뜰하게 모아 땅을 샀다. 가난에서 완전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희망'을 가지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좋았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오자 남의 땅이 돼 있었다. 그의 형들이 김 회장 동의없이 팔아치운 것이다. 김 회장은 "형들에게 말할 수 없는 원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땅을 잃어버린 농부는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스물다섯이 되던 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어쩌면 오늘의 김 회장을 만든 첫걸음이다. 땅이 그대로 남아 있었더라면 김 회장은 그저 평범한 농부로 지금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남의 밑으로 들어갔다. 건축자재 업체 '동신상사'에 입사했다. 자재를 운반하는 일을 했다. 철판을 나르다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했다. 깁스한 상태로 다음날 출근했다. 이를 가상하게 여긴 동신상사 사장 눈에 띄었다. 사장은 김 회장에게 일종의 경영 수업을 해줬다.

어느 날 회사 사장이 순댓국집으로 김 회장을 불렀다. 테이블에 지폐 몇 장을 놓은 뒤 대뜸 김 회장에게 물었다. "명환아, 사람이 거짓말하냐, 돈이 거짓말하냐." 김 회장은 답을 하지 못했다. 사장은 김 회장에게 호통을 쳤다. "돈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야. 명심해라!" 김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돈을 빌렸으면 상환 날이 되기 전에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뢰를 얻을 수 있소. 상환 날에 맞춰 못 갚을 수도 있소. 그러면 상환 날이 되기 일주일 정도 전에 미리 알려줘야 하오. 신뢰를 잃은 사람의 특징이 뭔지 아시오? 상환 날이 돼서야 '오늘 갚기 힘들겠다'고 통보한다는 거요."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양천구 덕신하우징 본사에서 뉴스1 서명훈 산업2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지난 30일 서울 양천구 덕신하우징 본사에서 뉴스1 서명훈 산업2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2018.10.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 "독립한 직원, 자식 같아"… "삼성·현대차 가는 직원, 박수 쳐줄 것" 

김 회장은 동신상사에서 나와 1980년 덕신상사(덕신하우징의 모태)를 설립했다. 몸으로 체득한 배움은 성과로 이어졌다. 데크플레이트 제조 기술력에 있어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다. 그러던 중 1990년대 중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 했던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다. 설상가상으로 김 회장은 영업부장이던 직원에게 큰 사기를 당했다. 협력업체와 거래업체들이 잇달아 파산해 회사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김 회장은 다시 신용과 신뢰로 돌파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공단 직원은 지원 조건으로 한 가지를 제시했다. "다시 창업할 때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고 실천에 옮겼다. 

김 회장의 성공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은 '신용'이다. 두 번째는 '일기를 쓰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위기 돌파 비결을 체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축도 해야 하고 확고한 신념도 가져야 한다. 마지막 계명은 '평생을 보고 고객에 접근하라'다.

"영업 사원 교육을 할 때 꼭 하는 말이 있소. 눈·비 내리는 밤에 고객사를 찾아가라는 것이오. 한창 더운 날 찾아가면 바쁘고 성가시기 마련이오. 눈·비 내리는 날이면 고객사 직원도 감동하오. 닭이나 연어 한 마리 사들고 당직 서는 직원과 함께 먹으면 그게 영업의 시작이오. 영업은 감동을 줄 줄 알아야 하오."

흐뭇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도 덕신하우징 오비(Old boy 약호) 모임을 한다. 덕신하우징에서 일하다가 독립하거나 더 큰 무대로 떠난 옛 직원들과 만나는 모임이다. 이들 중 일부는 IMF 위기 때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김 회장을 도왔다. 그는 이 대목을 회상하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현대자동차든 삼성이든 직원들이 더 큰 무대로 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보내주오. 오히려 박수를 칠 것이오. 내 밑에 있다가 독립해 성공한 친구를 보면 그렇게 기특할 수 없소. 나 역시 독립해 이 자리에 온 거 아니겠소. 출가한 옛 직원들도 내 자식만큼이나 소중하오."

김 회장의 성공 신화는 진행 형이다. 지난 6월 국내 주요 건설회사 삼성물산과 계약을 맺고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FAB) 2기 신축 공사 현장에 데크플레이트를 공급하기로 했다.

덕신하우징이 지금까지 조달청과 체결한 물류 공급 계약 규모는 약 517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 이 회사의 건축자재 제품이 관급 시장에서 차지한 비율은 75% 정도다. 지난해 덕신하우징 매출은 1258억원으로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김명환 회장 차에 붙은 '실종아동찾기캠페인'.2018.10.30© News1이승환 기자
김명환 회장 차에 붙은 '실종아동찾기캠페인'.2018.10.30© News1이승환 기자

◇ 대기업도 못한 '통큰' 출산장려금… 전국 방방곡곡 누비며 '실종아동찾기 캠페인'
 

올해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경제사절단에 김 회장 이름이 올랐다. 그는 "회사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며 "더 큰 욕심을 내기보다 희망을 전파하는 데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시행한 출산장려금 제도도 '희망'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면 500만원, 둘째 아이를 낳으면 그 두 배인 1000만원을 지원한다. 셋째 아이 출산 시 다시 두 배인 2000만원을 지급한다. 

넷째를 출산하면 총 7500만원을 받는 셈이다. 지난달 공사관리팀 소속 한 직원이 아이를 낳아 이 제도 첫 수혜자가 됐다. 김 회장은 "직원들이 네쌍둥이를 낳아 한번에 7500만원을 주면 참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덕신하우징이 매년 개최하는 '전국남녀 꿈나무 골프대회'는 IMF 기억으로 시작한 아동 지원 사업이다. 1998년 당시 골프선수였던 박세리씨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김 회장은 "골프란 스포츠, 그리고 여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았다"며 "꿈나무 골프대회로 육성된 아이가 박 선수처럼 외화벌이로 우리나라에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화벌이야말로 애국"이라는 신념도 내비쳤다.

돌아가는 길에 덕신하우징 본사 앞에 놓인 김 회장의 차 한 대가 보였다. 독일 자동차 업체 B사가 만든 M차량이었다. 국내 대기업 회장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량인 동시에 자동차 애호가 사이에서 '드림카'로 통한다.

차량 측면에 큼지막한 문구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이란 글자였다. 실종된 아이들의 흑백 사진도 차량에 새겼다. 이런 문구와 사진이 담긴 스티커를 최고급 명차에 붙인 기업인은 세계에서 김 회장이 유일할 것이다. 차주와 차량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김 회장은 희망이란 목적지를 향해 여전히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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