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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광인일기' 연출 김수정 "미치지 않았다. 단지 빛날 뿐"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참가작 11월2일~4일 아르코예술소극장 공연

[편집자주]

연극 '광인일기'에서 각색·연출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 News1
연극 '광인일기'에서 각색·연출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 News1

"꿈에 소설 '광인일기'를 쓴 루쉰이 나타나 광인의 일기장 2권을 주었어요. 루쉰이 연극으로 각색해서 고맙다며 마음껏 고치라고 했어요."

연출과 각색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는 31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분장실에서 기자를 만나 "중국 현대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이 100년 전인 1918년에 창작한 광인일기를 오늘날에 맞게 각색해서 내재화된 폭력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연극 '광인일기'는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도일)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직무대행 최창조)가 공동주최하는 2018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 스파프) 참가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기획초청 공연 '2018 세월호'에서 초연한 바 있다.

김수정 대표는 "지난 5월에 초연한 '광인일기'를 본 관객이라면 전혀 다른 내용이라서 깜짝 놀랄 것"며 "초연에선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이번엔 극단원들과 즉흥 연습을 통해 장면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소설 광인일기는 주위 사람이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다는 과대망상에 빠진 남자가 주인공인 1인칭 구어체 단편소설이며, 이를 통해 당시 중국의 가족제도와 유교의 위선을 날카롭게 파헤친 걸작이다.

김 대표는 "초연에선 주인공 광인(狂人)을 '미친 사람'이라고 받아들인 반면에서 재공연에선 빛날 광(光)으로 해석했다"며 "재공연은 깨달음을 얻어 스스로 빛나는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이 주인공을 미친 사람인지 아닌지를 최종 판단할 것"이라며 "이런 인식의 변화는 정의감에 불타서 세상에 적개심을 품었던 극단 신세계 단원들이 자신들의 모습에 의문을 던지면서 생겨났다"고도 말했다.

연극 '광인일기'에는 올해 연극계에 휘몰아친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의 여파가 그대로 반영됐다. 김 감독은 미투 과정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남성 지식인의 능동적 서사가 짙게 깔려 있는 원작에 의문이 들었다"며 "주변 인물에 머무는 광인의 가족들의 비중을 높였다"고도 말했다.

"예를 들어, '여동생이 사람들에게 잡아먹혔다'는 원작의 함의는 여동생을 매매춘이나 인신매매 등으로 넘겼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광인은 이 사건에 대해 슬퍼할 뿐이고, 그의 엄마는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다. 여성에게 가해진 수동적 역할을 무대에서 걷어내고 싶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연극 '광인일기' 초·재연에서 개 역할을 맡은 민현기 배우 (제공 극단 신세계)© News1
연극 '광인일기' 초·재연에서 개 역할을 맡은 민현기 배우 (제공 극단 신세계)© News1

김 대표는 가장 크게 바뀐 지점을 묻자 "영상과 음향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상황에서 배우들의 안무 동작이 많아졌으며 결말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작품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플라멩코 장면이나 배우들의 움직임을 정갈하게 다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포스터 디자인과 조연출을 맡은 박미르 배우는 "90kg가 넘는 체중임에도 춤실력이 독보적인 김형준·하재성 배우가 추는 플라멩코 장면이 빠져서 아쉽다"며 "반려견인 미니핀 '나무'가 포스터에 독사진으로 등장해 큰 위안이 된다"고도 말했다.

이에 반해 초연과 재공연에서 광인이 키우는 '개' 역을 맡은 민현기 배우는 "대형견인 황구로 설정해 연기를 맞췄는데 포스터에 소형견인 미니핀이 등장해 당황스럽다"며 "원래 설정한 대형견에 맞게 중량감 있는 연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연극 '광인일기'는 작품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중국 경극, 개 짖는 소리, 인간의 이빨 부딪치는 소리, 탄성 등을 적극 활용했다. 이번 작품에서 음향오퍼로 참여하고 있는 강주희 배우는 "출연 배우들이 직접 녹음에 참여했는데 박형범 배우의 목소리가 튀어서 녹음이 쉽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수정 대표는 "미쳤다는 의미가 나쁜 뜻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연극에 미쳤다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봤다"며 "관객들께서도 미쳐서 살 것인지 아니면 평범하게 살 건인지 한번쯤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극 '광인일기'는 오는 11월2일부터 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재공연한다.

한편, 지난 7일에 개막해 총 8개국 23개 단체의 22개 국내외 연극과 무용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국내 최대 국제공연예술제인 '2018 SPAF'도 11월4일에 폐막한다.

연극 '광인일기'에서 각색·연출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왼쪽)와 조연출과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박미르 배우© News1
연극 '광인일기'에서 각색·연출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왼쪽)와 조연출과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박미르 배우©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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