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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병상수 OECD 3위 '수치'…격리입원 값싼 해결 의존

지역사회서 정신질환자 퇴원 전부터 개입해야
정신보건예산 OECD 평균의 3분의 1…"우선순위 높여야"

[편집자주]

1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9.1.4/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1월4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에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2019.1.4/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평소 고인은 마음의 고통이 있는 모든 분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길 원하셨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을 거둔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47)의 가족이 조문객에게 인사를 건네며 임 교수의 유지를 되새겼다. 

임 교수는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가 예약도 없이 진료 시간이 끝난 뒤 찾아왔지만, 기꺼이 진료에 응했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피의자 박모씨(30)는 2015년 심한 조울증을 앓아 1년 반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후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씨는 1년간 외래진료를 받지 않은 채 지내다 사건 당일 처음으로 다시 병원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가능한 한 사회에서 배제하는 방법으로 그들을 관리해 왔다. 정신질환자를 사회 안으로 끌어안는 것보다 훨씬 쉽고 값싼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은 치료를 받는 것 자체에 큰 용기를 내야 한다. 치료되지 않은 정신질환은 악화돼 극단적인 경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정신질환자가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며 필요한 치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신질환 정책, 격리·수용→ '탈시설'로 전환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모 씨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피의자 박모 씨가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그동안 정신질환자 치료는 입원 중심이었다. 정신질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환자 본인은 물론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는 명목이 뒤따랐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의 안녕을 중시했던 과거의 문화가 정신질환 정책에 그대로 반영됐고, 이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입원 중심의 정신질환 치료는 OECD 회원국 중 상위에 위치한 병상 수로도 알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정신병상 수는 6만4137개로, 일본(33만4258병상),  독일(10만5026병상)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정신병상 수가 1.25개였는데, 이 역시 일본(2.63), 벨기에(1.37), 라트비아·독일(1.28)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준이다.

전준희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입원 중심의 치료 문화는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편견과 그들로 인한 문제를 값싸게 해결하고 싶었던 정부의 합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전준희 센터장은 "미국에선 환자 한 명이 1년 동안 정신 의료기관에 입원하는데 드는 돈이 1억3000만원이어서 그 비용을 충당하는 정부는 환자를 퇴원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며 "같은 조건에서 우리나라는 1500만원이 드는데, 정부 입장에서는 싼값에 여러 비용을 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정신질환자를 위험인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은 정신 치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문제는 치료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더욱 악화된다는 점이다.

최명민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의 자유권을 박탈하는 등 편견이 강할수록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고 숨어버리는 역효과가 난다"며 "정신질환자를 배제해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오히려 사회를 위험하게 만든 것"이라고 짚었다.

입원 중심 정신 치료가 '탈시설'로 방향을 튼 것은 정신 의료기관 강제 입원 조건이 까다로워진 후다.

과거에는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중 하나만 해당하면 강제입원을 허용했지만, 2018년 5월부터는 두 가지 요건 모두 충족해야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그 덕에 강제입원은 줄었지만,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방치되는 사례가 생겼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이번 사건의 피의자와 같이 퇴원 후 계속 치료를 받는지,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위험을 보호자와 의사가 외주 받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정신 전문가와 함께 '퇴원계획' 세워야

보건복지부는 필요한 경우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도 지역 정신보건센터에 퇴원 환자 정보를 알려 추적관리하고, 1년간 외래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외래치료명령제를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지난 2018년 7월 발표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복지부가 그린 그림에 '손발'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아직 15개 시군구는 지역 정신보건센터조차 없고, 인력도 태부족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역 정신보건센터는 정신질환자 증상 평가, 투약 관리, 치료 연계 등의 사례관리를 하고, 직업재활 등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지역 정신건강서비스 허브 기관이다. 더불어 지역주민센터 등 복지기관과 함께 필요한 보건-복지서비스를 연계한다.

2018년 기준 지역 정신보건센터는 전국 243개소가 있고 2365명이 일하고 있다. 1개소당 평균 9.7명이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중 정신질환자를 직접 만나는 사례관리 인력은 1개 기관당 4명 내외다. 사례관리 인력은 1인당 무려 70~100명의 등록 정신질환자를 담당한다.

전준희 센터장은 "한 명이 70명을 담당하면 개개인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어 마음속 불안감이 항상 있다"며 "결국 환자 상태가 안 좋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가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선진국은 한 명이 25명 정도를 관리한다"며 "업무 부담이 줄어야 환자 상태에 대한 제대로 된 사례관리를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환자 퇴원 후 지역 정신보건센터에 관련 정보를 알릴 게 아니라, 퇴원 전부터 지역 정신보건센터 사례관리 인력이 투입돼 함께 '퇴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신질환자 재활시설인 '태화 샘솟는 집'을 1992년부터 이끌고 있는 문용훈 관장은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는 미리 지역 정신보건센터에 대한 정보를 주고, 함께 퇴원 계획을 세워 퇴원-지역 정신보건센터 연결에 빈틈이 없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보건, 보건의료예산의 1.5%…정신질환자 삶에 초점 둬야

보다 근본적으로 음지에 있는 정신질환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정신질환자 수는 527만명(니코틴 사용장애 제외)으로 추정된다. 전체인구에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때 나온 1년유병률(10.2%)를 적용한 값이다. 그중에 중증 정신질환자는 전체의 1%인 52만명 수준으로 보고 있다.

같은 해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추정 정신질환자의 57.6%인 303만명이다. 나머지는 정신질환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국 교수는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는 등 특정 사람에 한해 치료를 강제하는 정책은 치료 사각지대를 만드는 한계가 있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치료받고 지역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향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4~5년 전 조현병 환자가 미국 대사를 피습한 사건을 계기로 모든 정신의료비를 정부에서 지원했는데, 도쿄 지역주민 5%가 정신질환자로 등록했다"며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수면 위로 올려야 위험을 관찰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재활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재활 현장에서 꾸준히 요구했던 과제다. 최명민 교수는 "정신질환자는 지역사회에서도 고립돼 있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꾸리기 어렵다"며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가 31만명 수준인 덴마크 오후스 지역은 850명의 정신건강 전문가가 4000명의 정신질환자를 위해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들은 정신질환자에게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고, 고용연습 서비스를 제공해 자립의 길을 터주며 식당 운영을 돕기도 한다. 오후스 지역 정신질환자는 필요한 사회서비스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산다.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의 사회 적응을 위한 각종 훈련과 생활 지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활시설 인프라가 빈약하다.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에 따르면 전국 재활시설은 총 292개에 불과하고, 그중 54.1%인 158개 기관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 몰려있다. 또 공동생활가정이 절반 이상이어서 다양한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정신보건 분야에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9년 복지부 전체 예산 72조5148억원 중 보건 예산은 11조 1499억원이다. 보건예산 중 정신보건 예산은 1713억원으로 1.5%에 불과하다. 2011년 기준 OECD 가입국 평균 5.05%의 3분의 1수준이다.

이영문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우리나라는 정신질환자 관련 대책이 없는 게 아니라 비용 등을 이유로 실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지원이 왜 필요한지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해 관련 정책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SNS에 올라온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 News1
SNS에 올라온 고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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