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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30개국 동물원 다닌 外人 눈에 비친 한국 실내동물원 '최악'

英 본프리재단 드레이퍼 대표의 韓 실내동물원 방문 동행해보니
'동물복지 훼손·질병 전염 위험'…"동물원 허가제 도입이 해결책"

[편집자주]

17일 경기 한 실내체험동물원에서 수달이 먹이를 달라며 통밖으로 손을 내미는 모습을 영국 본프리재단(Born Free Foundation)의 크리스 드레이퍼(Chris Draper) 대표가 보고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17일 경기 한 실내체험동물원에서 수달이 먹이를 달라며 통밖으로 손을 내미는 모습을 영국 본프리재단(Born Free Foundation)의 크리스 드레이퍼(Chris Draper) 대표가 보고 있다.© 뉴스1 이기림 기자

"20여년간 30개국 동물원을 돌아다녔는데…. 한국 실내동물원은 정말 최악이네요."

지난 17일 경기 하남시 한 실내동물원을 둘러보던 영국 본프리재단의 크리스 드레이퍼 대표가 꺼낸 말이다. 처음 그가 마주한 동물은 미어캣, 스컹크, 슬로우로리스, 새, 소라게 등. 동물들은 드레이퍼 대표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 경계라고는 바닥에 나있는 물길이 다였다. 물길 폭이 좁아 아이들도 넘어갈 수 있을 정도. 각 동물들의 구역도 경계가 모호했다.

동물원은 대체로 어두운 편이었다. 야행성 동물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 그러나 정작 동물들이 주로 머무는 위치는 조명에 밝게 빛나고 있었다. 동물들은 웅크린 채 얼굴을 몸에 파묻고 있었다. 야생 느낌이 나도록 켜놓은 소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섞여 소음처럼 느껴졌다. 드레이퍼 대표는 "동물들이 관람객들로부터 피할 은신처가 없다"며 "모든 곳이 개방돼 있고, 빛과 소음에 노출돼 있다는 건 정말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카피바라와 이구아나, 거북, 라쿤, 코아티 등도 경계선 없이 사람들에게 노출돼 있었다. 공중에 걸려있는 나무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라쿤도 있었다. 사막동물인 미어캣의 공간에는 땅파기를 할 모래가 없었다. 습도도 높았다. 드레이퍼 대표는 "라쿤, 코아티 등은 하나같이 정형행동을 보인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특히 그는 투명 통 안에 갇힌 수달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통에 나있는 작은 구멍 밖으로 앞발을 내미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드레이퍼 대표는 "직원이 주는 오이를 먹기 위해 수달이 구걸행위를 하고 있다"며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화를 냈다. 드레이퍼 대표와 함께 온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대표도 "종종 외국인들과 실내동물원을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모두 우울해하며 돌아가 씁쓸했다"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동물들에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수의사가 아니기에 정확한 진단은 힘들지만, 오랜 기간 야생동물을 공부한 드레이퍼 대표에 따르면 카나리아 등 조류에게 소화기·호흡기질환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관찰됐다. 이구아나가 혀를 내민 모습으로 볼 때 구내염이 의심됐고, 발톱이 휜 걸로 볼 때 면역력과 영양상태가 불량한 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카피바라의 피부상태는 좋지 않았고, 한 물고기 등에는 곰팡이성 감염으로 추정되는 상처도 있었다.

17일 경기 한 실내체험동물원 동물들의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17일 경기 한 실내체험동물원 동물들의 모습.© 뉴스1 이기림 기자
  
어웨어에 따르면 실내체험동물원은 우리나라에 약 100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곳에 대해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직접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효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동물복지 전문가들은 실내동물원 동물들이 대체로 적정 서식환경에 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드레이퍼 대표는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는 게 문제"라며 "실내동물원이나 야생동물카페에서는 동물의 올바른 정보제공이 어렵고, 동물의 귀여움만 강조해 장난감 또는 귀엽기 만한 존재인 펫(Pet)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도 어린이들이 동물에게 주먹으로 휘두르는 모습, 사육장을 손바닥으로 치는 모습 등이 발견됐다. 그러나 부모나 직원들의 통제를 볼 수 없었다.

동물과 접촉시 질병전염 및 외상 위험성이 큰 점도 문제다. 살모넬라 감염, 대장균 감염 등 사례는 매년 전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페럿, 라쿤, 스컹크 등 광견병 숙주개체들에 의한 인수공통전염병 및 교상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 간의 접촉(이종간 접촉)이 새로운 질병을 만들 수 있다고도 말한다.

황주선 수의학 박사는 "동물 질병이 사람에게 오는 것뿐만 아니라 관람객들 간의 질병이 동물을 통해 전파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며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드레이퍼 대표는 이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동물원을 운영하려면 허가를 받고, 정기검사를 받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쿤이 고향인 북미 야생에 살든, 영국 동물원에 살든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환경은 동일하지만 동물원에서는 적정환경 제공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그나마 영국 등 선진국은 허가제, 검사제 등을 시행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가제 시행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동물들의 복지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건 막을 수 있다"며 "한국 환경부에서 추진 중인 허가제 입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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