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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의 통일만들기] 공식적 미래의 오만함과 허상에 관하여

공식적 미래가 가진 이데올로기 베일 벗어야
북미회담 앞두고 2개의 공식적 미래 벗어던져야

[편집자주]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 소장© 뉴스1
오늘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계(視界) 제로의 미래를 VUCA로 표현한다. 변동성 (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 (Ambiguity)이 더욱 가증되고 있다는 듯이다. 하지만 인간은 VUCA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래가 변동적이고 불확실하고 복잡하고 모호한 것을 매우 불편해 한다. 그래서 인간은 뿌연 연기가 자욱한 VUCA의 미래를 하나의 확실한 '공식적 미래'(official future)로 편리하게 대체한다. 

공식적 미래! 세계 미래학계의 거물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Peter Shwartz)가 소개한 개념이다. 공식적 미래란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믿거나 가장 현실이 되기를 원하는 특정의 미래 시나리오를 말한다. 국가의 경우, 공식적 미래는 일반적으로 특정 이웃과의 평화(또는 적대), 헌법 질서의 내구성(또는 결여) 또는 경제가 어떻게 조직될 것인가(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에 관한 내용들로 구성된다.

이처럼 공식적인 미래는 한 조직과 사회에 공유된 기대의식이며 집단행동을 위한 기초를 만든다. 하지만 이처럼 미리 예정된 특정한 미래를 가정하는 것은 종종 큰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미래가 공식적 미래와 달리 펼쳐질 경우에 대처할 전략이나 의사결정을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미래가 공식적 미래와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는 사인들로 쉽게 간과해 버리게 된다.

이 정도로 공식적 미래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한반도의 현실로 돌아오자. 오늘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한반도의 공식적 미래는 무엇일까? 아니 그에 앞서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가진 한반도의 운명을 공식적 미래로 고정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하거나 바람직한 것일까? 잠시만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견고한 공식적 미래를 가지고 있고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상반된 공식적 미래를 가지고 살고 있는 비정상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소름 끼치도록 위태롭고 불안한 상황이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첫째, 오늘날과 같은 격동의 한반도의 미래를 하나의 특정 시나리오로 공식화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전략과 정책을 준비해야 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공식적 미래에 함몰되어 있는 듯하다. 공식적 미래에 대한 확신이 마치 전문성에 대한 증명이라도 되는 듯 공식적 미래를 굳건한 신념으로 붙잡고 있다. 좋게 보면 아마추어리즘이고 나쁘게 말하면 무책임의 끝장 판이다. 미래학자들 조차도 미래에 펼쳐질 다양한 가능성을 겸손하게 인정하는데 어떻게 격변의 한반도의 미래를 한 가지 공식적 미래로 그렇게 쉽게 결론 낼 수 있을까?  

둘째, 우리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공식적 미래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그리고 그 둘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 머지않아 북한은 비핵화를 할 것이고 남과 북은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공식적 미래에 올인해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북한은 절대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대화와 교류는 시간을 벌기 위한 시늉에 불과하며 언젠가 적화통일의 야욕을 드러낼 것이라는 공식적 미래를 만들어 놓고 오늘날 벌어지는 사건과 현상을 그 공식적 미래에 어떻게든 구겨 넣으려 하고 있다. 이처럼 두 가지 공식적 미래, 그것도 정면충돌하는 공식적 미래로 인해 우리사회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슈워츠가 지적했듯이, 공식적인 미래에는 항상 어느 정도의 희망적인 사고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자기 최면이 수반된다. 공식 미래에 내재된 가정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리는 사실상 그런 가정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결국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특히 한반도와 같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공식 미래'의 가정이 틀릴 수도 있음을 솔직하고 겸손하게 인정하고 끊임없이 수정해야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2월 말로 예정된 북미회담의 결과를 예측하느라 정부와 언론이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두 개의 공식적 미래를 벗어 던지지 않는다면 북미회담 후 각 언론사의 헤드라인은 지금도 예측가능하다. 한쪽에서는 '한반도 평화, 드디어 현실이 되다'라고 축제를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 현실화되는가'라며 국민들의 불안을 조장할 것이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공식적 미래의 희생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의 미래를 전혀 담보할 수 없는 공식적 미래를, 그것도 두 개의 공식적 미래를 집어던질 시간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들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준비하는 시나리오 플래닝의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 공식적 미래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벗겨내고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각의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오늘날의 혼란을 잠재우고 한반도를 우리의 의지대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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