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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이재명 재판에 대한 단상…"우리 모두가 정준영일지도"

[편집자주]

김평석 기자 © 뉴스1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빚어진 폭력 사건으로 시작된 ‘승리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경찰 유착, 성폭행, 탈세, 몰카 등 각종 불법들이 줄줄이 불거지면서 범죄 종합세트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승리 게이트 중심에 가수 정준영이 있다. 그는 지극히 사적인 부분의 영상을 몰래 찍어 SNS 단체 대화방에서 지인들과 공유했다. 그 속에서 나눈 그들의 대화에서 죄책감이나 책임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의 행동에 대중은 분노했고 분노는 그에 대한 영구 퇴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준영 사건을 보는 기자의 머리에는 묘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의 재판이 오버랩된다.

쾌락 대 불행한 가족사란 콘텐츠와 몰카 대 공개 재판이란 제작방식 모두 정반대인데도 말이다.

그것은 이 두 사건을 소비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정준영은 몰래 영상을 찍어 그들만의 세상에서 공유했다. 이재명 재판은 공개되고 치부일 수도 있는 불행한 가족사가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되고 있다.  

두 사건은 외향적인 부분에서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소비되는 과정에서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지켜보고 공유하며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생각을 배설하고 있다. 당사자의 입장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 관음의 냄새가 진동한다.

이재명은 빈민 출신이다. 지독한 가난에 학교도 포기했다. 소년공이 돼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고 사춘기를 보냈다. 그의 7남매가 모두 그랬다.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다. 뭉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끈끈한 형제애는 생존을 위한 필연이었다.

이재명은 살아남는 법을 찾았다. 장학생으로 대학에 가 공장생활에서 벗어났다. 장학금은 공장 월급보다 많았다.

그가 열어 놓은 가난 탈출의 길에 손위 형님도 올라탔다. 이재명은 돈을 대고 형님은 공부했다. 명석했던 형님도 장학생이 됐다.

이후 이재명은 변호사, 형님은 회계사가 됐다. 개천에서 용 난 둘은 집안의 기둥이었다. 차곡차곡 돈이 쌓였고 행복은 영원할 것 같았다.

새옹지마라 했던가. 세월이 흘러 돈독했던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원수가 됐다. 더구나 형님이 세상을 떠나면서 화해할 기회마저 영영 사라졌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두 형제의 삶을 재판정에까지 세웠다. 왜 싸우고 어떻게 싸웠는지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 이재명이 친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마음먹게 된 경위를 밝히며 ‘2005년께 이재명이 어머니의 노후자금 5000만원을 보관했고 그의 형님이 그 돈을 빌리지 못하면서 욕설을 하고 다퉜다’는 내용을 적었다.

그것이 두 사람 간 갈등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집안싸움 하나하나가 언론이나 SNS로 중계되고 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비난, 조롱, 동정 등 각자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가슴 아픈 가정사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의 가정사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정사는 사적 영역이다. 누구도 침해할 권리가 없다. 공인이라는 이유로 또 법정에 섰다는 이유로 가정사가 공개되고 해부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은 지난 11일 법정에서 가슴 속 말을 꺼냈다. 그는 “이 사건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뒤섞여 있다. 제 부덕의 소치지만 공적부분과 사적부분은 분리해주었으면 한다. 가족들이 법정에 끌려나오는 그런 상황이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이제 이재명을 기소한 검찰,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재판부, 재판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또 다른 정준영이거나 거대한 규모로 만들어진 정준영 SNS 대화방의 회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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