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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독립? 공장이나 지을 수 있나…'님비' 넘사벽

광양 불산공장 주민·정치권 반대에 무산
소재 제조 불가능 이유로 '환경규제' 꼽혀

[편집자주]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에 반도체웨이퍼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9.7.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에 반도체웨이퍼가 전시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9.7.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규제 문제를 두고 국내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앞서 과거의 사례를 돌아봤을 때 소재 독립을 위한 공장 건립부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 경제를 위해 필요하더라도 자신의 지역엔 공장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의 벽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글로벌 석유화학기업인 멕시켐(Mexichem)은 전라남도 광양항 배후부지에 여수광양항만공사와 손잡고 약 3000억원(3억달러)을 투자해 불산(불화수소) 제조공장을 건립하려 했다. 불산은 수소(H)와 불소(F)가 합쳐진 불화수소를 물에 녹인 액체로 업계에서는 일상적으로 불산과 불화수소라는 용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공장 건립을 위해 멕시켐과 여수광양항만공사의 투자유치 협약(MOA)이 2012년 2월 체결됐다. 그런데 그해 9월 경북 구미 지역에서 불산가스 유출사고가 발생하면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광양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는 구미 사고로 불산의 위험성이 드러난 만큼 불산공장 유치 계획을 즉각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광양항 불산공장 저지를 위한 범시민 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시민단체에 더해 당시 이성웅 광양시장과 이정문 광양시회 의장도 가세해 반대 투쟁을 이어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 시장은 여론이 악화되자 "항만공사가 불산 제조공장 유치를 철회하지 않으면 직접 행정(광양시)이 나설 것"이라며 경고하기도 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측은 이미 MOA를 체결해 이를 되돌리기 쉽지 않으며 공장을 철저한 검증과 절차에 따라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멕시켐 측도 구미 사고의 원인이 불산 저장 창고 관리의 허술함에 있었다고 지적하며 자신들은 안전에 있어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공장은 2013년부터 2년간 2단계에 걸쳐 준공될 예정이었으며 1단계에 연간 9만t, 2단계에 연간 13만t규모의 불산을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반대에 정치권도 가세하자 멕시켐 측은 '공장 유치를 반대하는 광양항의 이런 환경 속에서는 투자를 할 수 없다'며 투자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밝혔다.

이상조 전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이 지난 2012년 11월28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불산제조공장 유치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고 밝히고 있다. © 뉴스1 
이상조 전 여수광양항만공사 사장이 지난 2012년 11월28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불산제조공장 유치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고 밝히고 있다. © 뉴스1 

MOA를 추진했던 이 사장은 당시 투자 철회 사실을 밝히며 "기업을 유치하는데도 절차가 있고, 포기하는데도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불산의 위험성 및 산업적 특성의 장·단점과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토론의 기회도 갖지 않고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한 시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국, 이 사장은 이듬해 공공기관장 평가에서 D등급을 받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취임 초 '낙하산' 논란이 있었지만 항만 물동량 증가에 공로를 세웠음에도 낮은 등급을 받은 것은 불산공장 강행으로 시민들과 갈등을 빚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 사장은 최근 뉴스1과의 통화에서 "내가 이게 앞으로 우리나라 산업에서 대단한 역할을 할거라고 설명을 했다. 그렇게 어렵게 유치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반대를 했다"라며 하소연을 쏟아냈다. 더불어 이 사장은 지역 정치인들이 표심의 의식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드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제품에 대해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중 고순도 불화수소는 반도체를 세척하고, 회로를 새기는 데 사용되는 필수 소재로 전체 수입물량 중 40% 이상을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2012년 광양에 설립될 불산공장은 2차전지, 전기자동차 제조용 불산을 생산할 예정이라 반도체용의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기술개발과 공정 도입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불산공장이 '혐오시설'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관련 소재의 일본 수출 의존 탈피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반도체 산업구조 선진화 연구회는 7일 발표한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대응 방안 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국내에서 고순도 불화수소 개발이 불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로 '환경규제'를 꼽았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 이후 정부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공장 건설이 어려워졌고, 국내 소재 업체들이 고순도 불화수소 제조를 시도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환경 규제를 거론하며 포기하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연구회는 "국가적으로 장기적인 비전과 반도체 산업 고도화를 위한 정책적인 규제 완화, 인재 양성 및 글로벌 성장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라며 소재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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