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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판 살인의 추억 보육교사 살인사건 '무죄'…다시 미궁(종합)

재판부 "의심할만한 정황있으나 증거 불충분"
미세섬유·CCTV 영상 등 증거 대부분 인정 안돼

[편집자주]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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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어린이집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고인이 사건 발생 10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도내 대표적인 장기미제 사건인 이 사건은 다시 미궁에 빠졌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11일 오후 201호 법정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53)의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2009년 1월31일에서 2월1일 사이 이모씨(당시 27·여)를 택시에 태워 목졸라 살해한 뒤 제주시 애월읍 고내봉 인근 배수로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사건이 일어난 2009년 2월에도 경찰이 지목한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범행 시간을 특정하지 못했고 범인으로 입증할 뚜렷한 증거가 없어 풀려났다.

정확한 범행 시간도 추정하지 못한 채 사건을 종결했던 경찰은 2015년 일명 '태완이 법' 이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됨에 따라 2016년 3월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반을 꾸려 재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동물 사체 실험을 통해 범행 시간을 특정 짓고 피해자가 입었던 옷의 미세섬유가 박씨의 옷에서 발견된 점 등을 근거로 박씨를 법정에 세우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인 사건이라면 피고인의 양형이 관심사겠지만 이번 판결은 무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박씨를 범인으로 지목할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재판에서 검찰은 재판에서 피해자와 피고인의 미세섬유 유사성과 10년 전 CCTV 영상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피고인 진술로 구성한 증거는 없지만 법의학과 CCTV 영상 등 과학기술로 도출한 사실관계로 볼 때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라며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반면 박씨 변호인은 섬유분석결과의 신빙성과 저화질 CCTV 증명력 등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미세섬유의 증명력은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이였다.

앞서 법원은 미세섬유를 직접 증거로 보기 어렵다며 2018년 5월 박씨의 구속영장 신청을 한차례 기각한 적이 있다.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섬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입은 같은 제품의 옷에서 나온 섬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경찰은 7개월간 CCTV 정밀 분석 등 과학수사를 통해 증거를 보강하고 섬유 증거 등을 추가로 확보해 같은해 12월 21일 구속영장을 재신청, 구속에 성공했지만 결국 재판부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피고인의 손을 들어줬다.

◇"유사할뿐 같은 옷 아니다" 미세섬유 인정 안돼

재판부는 "피해자 신체에서 피고인 의류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와 유사한 진청색 면섬유가 검출됐는데 대량으로 생산되는 해당 섬유의 특성상 동일한 섬유라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씨 택시 뒷좌석 바닥과 트렁크에서 발견된 피해자 무스탕의 털이나 미세섬유 역시 유사성은 인정하지만 동일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CCTV 영상 및 분석결과만으로는 영상 속 차량이 박씨의 택시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2009년 2월 경찰이 박씨 숙소에서 압수한 청바지는 압수영장없이 수집하는 등 과정이 위법하다며 증거에서 배제했다. 이 청바지는 미세섬유 증거와 관련있다.

재판부는 "사형과 무기징역만 법정형으로 규정된 강간살인죄와 같은 중대범죄 수사여도 위법한 압수수색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입증됐다고 볼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박씨는 이날 바로 석방됐다. 박씨는 재판부가 판결문을 읽는 도중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박씨 변호인은 "검찰과 경찰이 열심히 수사한 것은 인정하지만 용의자를 박씨로 특정해 다른 용의자를 배제했다"며 "향후 판결이 확정되면 (국가를 상대로)손해배상 청구를 할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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