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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가는데 관리자 허락받고 가라?…"참다가 병났어요"

참다가 방광염 생긴 직원만 4명…연차 사용도 ‘눈치’
사측 “화장실 핑계로 근무지 이탈하지 말도록 한 조치”

[편집자주]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중견업체인 ‘대흥알앤티’의 생산성 강화에 따른 근무지침표.2019.7.15.© 뉴스1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중견업체인 ‘대흥알앤티’의 생산성 강화에 따른 근무지침표.2019.7.15.© 뉴스1

“화장실 가는 걸 허락받는 것도 모자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하니 참다가 병났습니다. 계급장 떼면 다 똑같은 사람인데, 제발 사람답게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중견업체인 ‘대흥알앤티’의 한 여직원이 내뱉은 하소연이다. 이 여직원은 최근 회사 지침으로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렸다.

대흥알앤티는 직원 700여명 규모의 매출 2000억원대 중견기업으로, 김해에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업체다. 최근 생산성 향성을 목적으로 근무지침을 만들어 지난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근무지침의 주요 내용은 △시업·종업 시간 준수 △식사·휴게 시간 준수 △근무지 이탈 금지 △업무지시 준수 △작업복 착용 준수 △연차사용 △근태 단말기 위치 이동 등이다. 회사는 이 같은 일반적인 수준의 준수사항을 위반하면 경고나 징계, 업무변경 및 부서 전환배치, 관련 교육 등을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 근무지침 시행 후 평균 3년 정도를 이 회사에서 근무해온 40~50대 여직원들 사이에서 급성 방광염이 발병한 것.

급성 방광염에 걸린 4명의 여직원들은 제때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억지로 참으면서 병이 난 것이라 주장한다. 이전까지는 한 차례도 이런 증세가 없었는데 사측이 화장실 사용을 기록하면서부터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움에 참고 근무했다가 병원행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측에서 화장실 이용을 근무지 일탈로 간주하고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이 관리자들을 통해 직원들에게 전해지면서 불편함은 더욱 가중됐다고 주장했다.

부서장 등 관리자들이 사내 곳곳의 화장실 앞에 서서 시간을 일일이 체크해 컴퓨터에 기록했다. 결국 화장실을 자주·오래 이용하는지 여부가 직원들의 임금에 간접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이 됐다. 사측의 화장실 이용과 관련된 방침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중견업체인 ‘대흥알앤티’의 생산성 강화에 따라 근무지침표가 세워져 화장실 이용을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있다. 2019.7.15. /© 뉴스1
경남 김해의 자동차부품 중견업체인 ‘대흥알앤티’의 생산성 강화에 따라 근무지침표가 세워져 화장실 이용을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있다. 2019.7.15. /© 뉴스1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소속 정동식 대흥알앤티지회장은 “화장실 이용 같은 경우에는 개인 자유의사로 간주해야 하는데, 사측에서 생상선 향상을 내세워 인권침해까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개인 연차는 사측에 세세한 설명을 해야만 사용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사유’, ‘병원’ 등으로 올리면 반려돼 개인 치부를 들어내는 일이라도 낱낱이 적어 올려야 했다는 것이다.

사측은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화장실 이용 관련 근무지 이탈 등 지침을 슬그머니 철회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 향상이 필요했고 기초질서와 관련된 부분을 강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화장실 이용이 인사고과에 반영된다는 노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사측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초적인 근무지침을 강화했고, 화장실을 핑계로 근무지를 이탈하지 말라는 차원”이라며 “화장실을 다녀온 직원들이 근무지 이탈로 기록되면 안되니 조·반장들에게 이야기하고 화장실을 가라고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방광염에 걸린 직원들에게 병원 진료를 지원했지만 스스로 거부했다. 화장실 이용 여부를 인사고과에 반영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대흥알앤티는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원들에게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임금·단체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깊어지자 노조가 파업으로 맞섰고, 사측이 식사를 제공하지 않으면서다.

당시 난데없는 사측의 방침에 금속노조 소속 노동자 120여명이 실제 회사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지 못했다. 노조는 이런 불편을 조장하면서 대표노조 세력을 줄이려는 ‘구시대적인 얄팍한 꼼수’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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