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직지원정대 10년간의 등반 마치고 고향으로

고(故) 박종성 민준영 시신 및 유품 확인

[편집자주]

2009년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실종된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오른쪽,당시 36세)과, 박종성(〃 42세). © News1 이종덕 기자
2009년 네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실종된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오른쪽,당시 36세)과, 박종성(〃 42세). © News1 이종덕 기자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 대장은 유족 및 대사관 관계자와 함께 13일(현지시간) 네팔 포카라 시내 간다키 병원에 안치된 고 박종성 민준영 대원의 시신과 유품을 확인했다.

고(故) 박종성의 친구인 최인배 한국산악구조대 부대장은 유품을 정리하다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아무런 말없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고(故) 박종성의 형 종훈씨는 “동생 종성이가 가는 마지막길에 어루만져주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울먹이는 고(故) 민준영의 동생 규형씨의 손을 꼭 잡았다.

13일 직지원정대 고 박종성의 형 종훈씨(가운데)가 대원들의 시신 및 유품확인을 마친 후 박인수 대장(오른쪽)과 고 민준영의 동생 규형(왼쪽)씨의 손을 꼭 잡은채 네팔 간디키 병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13일 직지원정대 고 박종성의 형 종훈씨(가운데)가 대원들의 시신 및 유품확인을 마친 후 박인수 대장(오른쪽)과 고 민준영의 동생 규형(왼쪽)씨의 손을 꼭 잡은채 네팔 간디키 병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북벽 등반중 교신 어려우니 루트 개척 마무리 하고 교신하겠다” 2009년 9월 25일 오전 8시15분 박연수 대장이 히운출리 북벽에서 무전을 보내온 박종성 민준영 대원과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시신확인을 마친 박연수 대장은 “그동안 두 대원의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렸다”며, “히말라야에서 외롭게 지냈을 후배들이 10년간의 등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 편안히 쉬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연수 대장과 유가족은 10년의 세월동안 사고현장을 수없이 찾아왔다. 올 9월에는 사고현장에서 풍등을 띄우는등 10주기 추모 행사를 계획 하고 있었다. 추모비도 2번 자리를 옮겨 3번이나 다시 세웠다. 기후변화로 히말라야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13일 네팔 간디키 병원 검안소에서 직지원정대의 유품을 확인하던 최인배 한국산악구조대 부대장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13일 네팔 간디키 병원 검안소에서 직지원정대의 유품을 확인하던 최인배 한국산악구조대 부대장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장은 지난 12일 오후 2시35분 유족과 함께 네팔에 왔다. 시신과 유품확인을 마친 유족들은 DNA 검사 등 마지막 확인절차를 마무리한 뒤, 14일 네팔 포카라에서 고인들의 화장식을 마치고, 오는 17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직지원정대는 2006년 충북산악구조대원을 중심으로 해외원정등반을 통해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결성됐다.

박종성‧민준영 대원은 2008년 히말라야 차라쿠사지경의 무명 미담봉을 초등해 '직지봉'(해발 6235m)으로 명명한 주인공들이다. 두 대원은 2009년 히운출리 북벽에 '직지루트'를 개척하려다 실종됐다.

13일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중 촬영한 히말라야 랑탕봉(오른쪽)과 가네쉬봉.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13일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중 촬영한 히말라야 랑탕봉(오른쪽)과 가네쉬봉. .2019.8.13/뉴스1 © News1 이종덕 기자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