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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곁에 살아있는 역사 '평화의 소녀상'…안녕하십니까?

전국 119곳 함께…미국·독일·캐나다 등 세계 27곳도
칠 벗겨지고 새똥 들러붙고 관리소홀…"당국 나서야"

[편집자주]

뉴스1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17곳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중 11곳을 찾아 특징과 관리 상태를 살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 내 소녀상, 구로구 구로역 북부광장 내 소녀상, 금천구 금천구청 앞 소녀상, 성북구 한성대 입구역 인근 한중소녀상, 성동구 왕십리역 앞 소녀상, 서초구 서초고 내 소녀상, 성동구 무학여고 내 소녀상. 2019.8.14/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뉴스1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서울 17곳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중 11곳을 찾아 특징과 관리 상태를 살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 내 소녀상, 구로구 구로역 북부광장 내 소녀상, 금천구 금천구청 앞 소녀상, 성북구 한성대 입구역 인근 한중소녀상, 성동구 왕십리역 앞 소녀상, 서초구 서초고 내 소녀상, 성동구 무학여고 내 소녀상. 2019.8.14/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광장 한 편, 심지어 학교 안에서도 만날 수 있는 역사가 있다. '현재진행형'인 한일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위안부 평화비', 이른바 '평화의 소녀상'이다.

2011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진 소녀상은 이후 전국에 건립되면서 위안부 문제의 잔혹성과 심각성을 일깨웠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8월12일 기준으로 전국 119개가 설치된 상태. 미국과 독일, 캐나다와 중국 등에 설치돼 있는 것도 27개(소녀상 외 기림비 포함)에 이른다.

서울에만 강북 13곳과 강남 4곳 등 17곳에 소녀상이 있다. <뉴스1>은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이중 11곳을 찾아 특징과 관리 상태를 살폈다.

소녀상은 일반에 친숙한 의자에 앉은 모습부터 곧게 선 형상까지 다양했으나 단아하게 꾸짖는 듯한 눈빛은 한결같았다. 그러나 지어진 지 3년 이상 지난 소녀상이 대부분인 탓에 관리의 아쉬움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비·새로 '희망 기원'…지역마다 다양한 자태

소녀상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상징은 나비다. 이화여대 앞 대현문화공원 소녀상은 등짝을 가득 채우는 푸른 나비 날개를 달았고, 금천구청 광장 앞에 선 소녀상은 손바닥과 어깨, 옆구리에 나비가 날아들었다. 서초고등학교와 무학여자고등학교의 소녀상에는 노리개에 나비가 달렸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첫 소녀상을 처음 만든 김운성, 김서경 작가는 나비에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환생의 의미도 담겼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더라도 그 자리에 남아서 역사를 바라보겠다는 뜻이다.

크고 작은 새에 희망을 담은 곳도 많다.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쌍둥이들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구로역 북부광장, 성동구 왕십리광장, 이태원 입구 광장의 소녀상 등에는 왼쪽 어깨에 동일한 새가 앉아 있다. 이 새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와 살아 있는 우리를 연결해주는 영매라는 설명이다. 일본이 왜곡하는 일제시대 역사 문제가 올바로 해결될 때까지 투쟁을 함께 한다는 의미도 서렸다.

왕십리 광장에는 '쌍둥이 소녀상' 외에도 할머니와 장년 여성, 무릎을 감싸고 앉은 소녀상 등 총 4개 소녀상이 있다. 이중에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들고 서있는 소녀상도 있다. 왕십리역 앞을 지나던 서모씨(29)는 "방송 등을 통해 종로 소녀상만 보다가 왕십리 소녀상을 보니 암울한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작가와 각 지역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의 뜻이 담긴 소녀상은 다양한 작가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하면서 가지각색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성북구 동소문동 지하철 한성대 입구역 부근에는 머리를 길게 따은 이국적인 소녀상이 우리 소녀상 옆에 앉아 있다. 소녀상이 2개, 빈 의자가 1개 등 총 3개의 의자가 시민들이 이용하는 버스정류장 옆을 지키고 있다.

이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가 중국 상하이사범대 앞에 세워 쌍둥이로 만들어진 '한중 소녀상'이다. 비범한 눈빛을 가진 우리 소녀상과 함께 억울함을 지낸 채 한이 서린 중국 소녀상의 눈망울에 지역 주민들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출퇴근길마다 다지고 있다. 9일 마주친 정지운씨(45)는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을 바꾸려고 왔다"면서 소녀상과 사진 촬영을 <뉴스1>에 부탁하기도 했다.

이대영 무학여고 교장(전 서초고 교장) 주도로 만들어진 서초고와 무학여고에 자리한 소녀상은 땋은 머리, 한복차림에 두 손은 태극기를 꼭 쥐고 있다. 부국강병을 기원하는 의미다. 벗어진 신발 한쪽은 '일본의 만행에 죽음보다 더 큰 치욕을 피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담겼다. 학교 내에 소녀상을 설치한 두 학교는 방학 기간 등을 이용해 일반도 소녀상을 만날 수 있게 문을 열고 있다.

최장 9년간 길가에서 시민들을 만난 소녀상 관리 실태는 일부 아쉬움을 자아냈다. 도색이 벗어진 부분도 있었고, 일부는 파손된 곳도 파악됐다. 2019.8.14/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최장 9년간 길가에서 시민들을 만난 소녀상 관리 실태는 일부 아쉬움을 자아냈다. 도색이 벗어진 부분도 있었고, 일부는 파손된 곳도 파악됐다. 2019.8.14/뉴스1 © News1 황덕현 기자

◇군데군데 파손에 새똥까지…"관리 주체 애매한 탓"

최장 9년째 시민을 만나고 있는 소녀상은 세월의 흔적과 관리 부실로 군데군데 부서지거나 칠이 벗어진 곳도 눈에 띄고 있다.

대표적인 종로 소녀상은 머리 도색이 군데군데 벗어졌다.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빈 의자의 칠은 3분의 1가량 벗겨진 상태다. 한 시민은 소녀상 머리 사진을 찍는 기자를 바라보다가 "이런 건 국가나 서울시가 좀 나서서 칠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아무리 시민운동이라고 하더라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로역 북부광장 소녀상은 건립 3년 만에 소녀상과 빈 의자 다리 틈이 벌어진 상태다. 눈밑과 콧잔등, 두 손 사이 부분은 군데군데 칠이 벗어진 상태가 확연하다. 소녀상을 건립했던 구로평화의소녀상 주민모임은 "구로구에서 맡아 청소 등 관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으나 구로구는 "여성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있다"면서 자세한 보수 일정 등은 내놓지 않았다.

서초고 소녀상은 손등과 태극기 부분에 떨어진 새똥이 딱딱하게 굳었다. <뉴스1>이 방문한 12일 오후에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지만 새똥은 씻기지 않았다. 서초고 측은 "관리하는 분이 따로 있으며, 학생들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정비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세워질 뻔 하다가 지난해 4월 마포중앙도서관에 자리를 잡은 '마포 소녀상'은 빗물에 현판이 지워진 상태다. 소녀상 설치에 도움을 준 노웅래, 박영선, 안규백 의원과 박홍섭 마포구청장 이름 등이 붙은 안내판은 비닐 테이프로 위태롭게 고정돼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측은 "관내 청소를 하면서 물기 등을 일부 닦기는 하지만 관리 주체는 '마포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라고 못박았다. 이에 반해 마포 소녀상 추진위 측은 "도서관에 기증한 것이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잘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앞서 '서울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등을 통해 소녀상을 관리, 보수할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관리 주체를 놓고 여전히 갈등이 빚어지는 탓에 시민들은 '지금 서로 미룰 때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9일 오후 왕십리 소녀상 앞에서 만난 김모씨(24·여)는 "소녀상 훼손 등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과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소녀상 파손이나 훼손이 벌어지기 전에 관리, 보수가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면서 소녀상을 닦아온 시민활동가 이상철씨(34)는 "개인이 소녀상을 도색, 보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면서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작은 예산이라도 세운다면 우리의 역사인 소녀상의 개보수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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