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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왕 즉위]외교관 출신 왕비…'여성일왕론' 부르는 공주

마사코 왕비, 아들 낳으란 압박에 적응 장애 겪기도
"유학 경험에 유창한 영어실력" 日서도 주목

[편집자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는 마사코 왕비. © AFP=뉴스1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역 없이 대화를 나누는 마사코 왕비. © AFP=뉴스1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를 계기로 미국 하버드대 출신으로 외무성 관료로 활약한 마사코 왕비가 한껏 주목을 받고 있다. 마사코 왕비는 결혼할 때만 해도 반짝반짝하는 존재였지만 왕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늘 뒤에 숨어 있었다.  

일본인들이 황후(皇后)로 부르는 왕비는 일본 국민을 보듬는 전통적인 어머니로서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마사코 왕비는 세 자녀를 낳고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살아온 시어머니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확연히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경력이나 과거 희망사항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유학파에 외교관으로서의 경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마사코 왕비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넓혀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미국·러시아 등지에서 보낸 마사코는 영어와 러시아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세계 최고 명문 하버드대 경제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도쿄대 법학부 3학년에 편입했고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한 재원 중의 재원이다.  

이 때문에 결혼 당시 일본 왕실외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실제 결혼 초반에는 외국 순방 등 대외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 AFP=뉴스1
나루히토 일왕과 마사코 왕비. © AFP=뉴스1

하지만 결혼과 함께 오히려 마사코 왕비의 시련이 시작됐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에 시달렸다. "전력을 다해 당신을 지키겠다"며 프로포즈한 남편 나루히토 일왕도 보호막이 돼주지 못했다. 특히 2001년 왕위를 계승할 수 없는 딸(아이코 공주)을 낳은 후에는 압박이 더 심해져 '적응 장애' 판정을 받고 10년 넘게 칩거 생활을 했다.  

이와 관련해 오랫동안 '천황제'를 연구한 케네스 루오프 미국 포틀랜드 주립대 교수는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 성소수자 등 전 세계적으로 삶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왕실에 들어간 여성은 남자를 낳아야 한다는 세계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던 마사코가 왕비로서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른 건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행사 때였다. 마사코 왕비는 당시 통역 없이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유창하게 대화해 호평을 받았다. 만찬장에 통역이 배석했으나 할 일이 없어 먼 산만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대학 졸업 후 곧장 왕실에 들어가 육아에 전념한 시어머니 미치코 상왕비와 달리 마사코 왕비는 현대적인 커리어우먼 이미지가 강하다. 외국 귀빈과 통역 없이 대화하는 등 이전에 왕실 여성이 보여주지 못한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면모도 기대감을 키우는 부분이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에 대한 일본 내 여론도 호의적이다. 21일 NHK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539명 중 약 71%가 "(지금의 왕실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별 관심이 없다" "전혀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아버지와 비교해서도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 즉위 20주년 맞춰 실시했던 지난 2009년 조사와 비교해, 왕실에 친밀감을 느끼거나 왕실과 국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고 답한 비율은 10% 가량 늘었다. 

마사코 왕비의 딸 아이코(愛子) 공주도 주목된다. 일본 헌법상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 일반인과 결혼할 경우 아예 왕족 지위까지 박탈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아이코 승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명문학교 부정 입학 스캔들에 휘말린 차남 일가 자녀들에 비해 성적도 높고(도쿄대 입학 안정권이라고 한다) 나루히토 일왕 부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지난 2017년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일본인 3명 중 2명이 여왕 즉위가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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