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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도 젠더혁신 바람 '솔솔'…우리나라도 임신부용 실험복 등장

ESC, 임신부 연구자 실험환경 조사·실험복 증정 캠페인
성별에 따른 R&D 이뤄져야…"과학기술 '젠더혁신' 제도화해야"

[편집자주]

 @뉴스1 DB
 @뉴스1 DB

과학기술계에서 '젠더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주체로서의 여성 연구자에 대한 권리를 찾는 것은 물론 신약개발 등 다양한 R&D에 성별을 고려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이를테면 임신부 연구자들을 위한 실험복(백색가운)이 등장했고 남성만이 아닌 여성을 고려한 R&D가 이뤄져야 한다는 제도 수립을 위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임신 후 여성 가운은 작고 남성 가운은 땅에 끌려 불편했어요"…임신부용 실험복 배포


지난 22일부터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임신부 연구자 실험환경 조사와 실험복 증정 캠페인 시작했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임신부용 실험복이 제작, 생산,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에서는 일부 임신부용 실험복이 판매되고는 있다.

윤정인 ESC 젠더·다양성특별위원장(GH바이오텍 연구소장)은 "임신부 과학기술 연구자들은 실험이나 연구 과정에서 바이러스, 세균 등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장비인 실험복을 거의 입지 못한다"면서 "여성 실험복 중 가장 큰 옷을 입어도 단추가 잠기지 않고, 여성 실험복 중 가장 큰 옷을 입으면 실험복이 땅에 끌리곤 해 입지 않기도 했는데 그럴때는 위험한 약품 등을 다룰 때 저를 보호해 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연구현장에서 겪은 임신부들의 이러한 고통에 ESC는 임신부 연구자 실험환경에 대한 설문조사와 동시에 임신부 연구자들이 편하게 착용 가능한 멋진 실험복을 무료 배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를 포함해 지역 과학기술특성화대학교 소속 여학생이 들이 꾸린 단체 '페미회로'도 여성과학기술인들에 대한 활동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는 생리때문에 결석을 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생리공결제'가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연구현장에서 여성과학자들의 목소리에 정부도 젠더혁신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다. 정부는 올해 초 여성연구자의 경력단절 예방, 연구와 육아 양립을 위한 지원방안을 마련해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마련한다는 취지의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했다.

이 기본계획으로 정부는 젠더혁신 신규 연구 발굴하고, 연구 계획서에 성·젠더 분석 항목 추가한다고도 약속했다. 이로써 과학기술 R&D 분야 여성일자리를 기존 16%에서 2023년까지 30%로 확대하고, 여성보직자 비율은 9.5%에서 20%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임신부용 실험복(ESC 블로그 갈무리)© 뉴스1
임신부용 실험복(ESC 블로그 갈무리)© 뉴스1

◇"똑같은 의약품이라도 남녀따라 부작용 달라"…R&D초기부터 성별고려돼야

지난 2010년 발간된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1997~2000년 사이 미국에서 시판된 의약품에 대한 부작용을 추적한 결과 10개 의약품 가운데 8개가 남녀에게서 각각 다른 부작용이 나타났다. 성별에 따른 부작용이 다른데 같은 약을 처방하고 있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개발 초창기 단계에서 남녀 성별의 차이를 반영했다면 이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젠더혁신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자동차 안전벨트는 남자들의 체형에 맞춰 설계돼 있고, 미국에서 시판중인 약 10개 중에 8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부작용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성별에 따른 임상을 진행하지는 않고 있다"면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젠더혁신' 개념을 담아 연구개발이 진행돼야 하고 국회와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R&D 수행시 성별 차이를 반영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 1월 25일부터 척추동물과 인간에 대한 모든 연구제안서를 작성할 때 성을 하나의 변수로 고려할 것을 의무화했으며 유럽도 혁신종합계획 '호라이즌(HORIZON) 2020'에 이같은 내용을 반영했다. 유럽의 경우 '호라이즌 2020'를 시행한 후 젠더혁신과 관련한 지원과제 비율이 13.5%에서 36.2%로 증가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할 때 성을 하나의 변수로 두고 하지는 않는다. 이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과학기술 연구분야에서 '젠더혁신'을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관련 입법은 지난해 이뤄졌다.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과학기술계의 성별 특성 분석에 기초한 '젠더혁신' 반영을 강화하는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기에는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성별 특성 분석에 기초한 과학기술혁신 촉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고, 정부는 성별 특성을 분석한 후 결과를 고려해 국가 R&D를 수행하도록 하며 관련 전담기관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유성재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가 없이도 젠더혁신을 이뤄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을 모두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젠더혁신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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