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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의 동네방네] '끝까지 방심은 금물'

바둑에서 배우는 것들

[편집자주]

박준희 관악구청장.(관악구 제공) © 뉴스1
우리 세대들이 특히 시골에서 보냈던 성장기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금 아이들처럼 휴대폰, 온라인게임은 언감생심 전자오락기나 롤러스케이트, 하다못해 인형이나 조립식 블록 같은 장난감마저 귀했다.

어린이 때는 나뭇가지를 장총 삼아 전쟁놀이를 하거나 구슬치기, 딱지치기가 대부분이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공부하는 짬짬이 즐겼던 오락이 몸을 부대끼는 씨름이나 머리를 쓰는 바둑, 장기였다. 때문에 우리 세대들은 씨름, 바둑, 장기라면 대부분 장문이나 축 정도는 잴 줄 아는 초급 수준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쁜 도시인으로 살게 되면서 느긋한 시간과 마음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바둑, 장기와 멀어져 가끔 늦은 밤 TV로 프로기사들이 두는 것을 구경이나 하는 처지다. 그러나 바둑, 장기를 가까이하면서 얻어들었던 지식과 교훈들은 이후의 삶에 경각심을 주는 경우가 많다. 바둑이든 장기든 인생이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방심'과 '자만'이다.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방심하는 순간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위기에 빠졌다고 낙담할 것은 없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한쪽 문을 열어주신다'고 위기에는 늘 기회가 함께 있다는 것도 바둑에서는 흔하게 목격된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 해도 방심하면 대마가 죽고, 어느 순간 다 죽은 것 같았던 대마가 기사회생 함으로써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행정에 입문한 이후로는 바둑이 주는 교훈 중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를 처음으로 친다. '두 발로 땅을 단단히 딛고서 하늘의 별을 보라'는 철학적 가르침이 있는 교훈인데 바둑을 둘 때 상대방의 돌을 잡으려면 내 돌이 잡히지 않도록 먼저 단도리를 튼튼히 하라는 뜻이다. 지방행정가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을 깊이 하고, 미래에 아무리 좋은 규정이나 정책도 현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게 하는 교훈이다.

장기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훈수 두다 뺨 맞는다'고 하지만 훈수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은 한발 뒤에 떨어져 장기판 전체를 내려다보면 선수가 자기 수에만 빠져있어 못 보는 수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꼬이고 안 풀릴 때면 그 속에서 헤매는 대신 멀리 빠져 나와 넓고 길게 문제를 대하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게 되는 지혜가 장기판에 숨어있는 것이다.

서두에 어려서 씨름을 즐겼다고 했는데 씨름도 마찬가지다. 안다리든 밭다리든 들배지기든 씨름에서 이기는 기술은 대부분 공격해 들어오거나 방어하는 상대방의 힘을 내 힘과 함께 역이용해 구사하는 것들이다.

내 힘만 믿고 무작정 공격하다가 되치기당하기 쉬운 것은 씨름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똑 같이 적용되는 원리라서 사람 사이의 극심한 갈등관계를 풀어나갈 때 매우 유효한 가르침을 품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와중에 예정에 없던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과 상인, 자영업자들을 위해 구청장으로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방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에 이르러 때 아니게 바둑, 장기, 씨름 이야기를 하게 됐다.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하는 바둑판의 순리대로 코로나19 위기를 잘 극복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기회가 올 것을 믿으며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겠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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