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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가족의 숭고한 희생'…홍범도 장군 아들·부인에 건국훈장

부인 이씨, 고문에 숨지고…아들 교전 중 전사
보훈처, 독립유공자 275명 포상…여성 33명

[편집자주]

홍양순 선생의 활동이 기록된 '홍범도 일지' 필사본.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제공) © 뉴스1
홍양순 선생의 활동이 기록된 '홍범도 일지' 필사본.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제공) © 뉴스1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의 아들과 부인이 건국훈장을 받는다.

국가보훈처는 오는 3·1절 102주년을 맞아 이들을 비롯해 275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36명(애국장 28·애족장 108), 건국포장 24명, 대통령 표창 115명 등이다. 생존 애국지사는 없으며 여성은 33명이다.

홍 장군의 아들 홍양순 선생과 부인 단양이씨(丹陽李氏)는 이번 포상에서 모두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1908년 홍 선생은 만 16세의 나이로 함경남도 정평군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 중 순국했다. 그해 3월 부인 이씨도 남편의 의병 활동으로 인해 체포돼 고문 중 유명을 달리했다.

독립기념관 독립운동가 열전 중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편에는 홍범도 부인 이씨와 아들 양순에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일제 앞잡이들은 이씨를 협박해 남편에게 편지를 쓰도록 강요했다. '실끝같은 목숨이 없어지면 그 뿐인데, 영웅호걸인 내 남편은 나같은 아녀자의 말을 곧이 듣지 않는다. 너희 놈들은 나와 말하지 말고 너희 마음대로 해라. 나는 절대로 글을 맡지 않는다' 이씨는 반죽음을 당하는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홍범도 의진에서 막하 중대장으로 활동하던 아들 양순은 의병 20여명을 데리고 정평의 바배기라는 곳에서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때 양순은 중대장 답게 앞장서서 의병들을 독려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다. 아들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은 홍범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양순의 어머니도 갑산 감옥에서 옥사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들마저 죽으면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의병대장 홍범도는 자기의 슬픈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보훈처는 "홍범도의 부인과 아들이 의병부대에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순국하는 등 독립운동이 한 인물뿐 아니라 전 가족의 숭고한 희생 속에 진행된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도철 선생의 순국 당시 상황이 담긴 3·1 운동 관련 자료. ('국가기록원' 제공)© 뉴스1
박도철 선생의 순국 당시 상황이 담긴 3·1 운동 관련 자료. ('국가기록원' 제공)© 뉴스1

1919년 4월 충북 진천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던 중 일본 헌병의 총에 맞아 순국한 박도철 선생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게 된다. 박 선생은 독립운동 자료에서 확인되는 순국일과 제적등본에 기재된 사망일이 일치해 공적이 확인됐다.

아울러 제주도에서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한 무장투쟁가 김용충 선생, 미국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회의에서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고 구미위원부 직원으로 활동했던 김노디 선생 등은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이번 포상은 제102주년 3·1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각각 수여된다.

중앙기념식장에서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박도철 선생(건국훈장 애국장), 임기정 선생(건국훈장 애족장), 김은주 선생(건국포장), 김형준 선생과 정갑생 선생(대통령 표창) 등 5명이다.

이로써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은 건국훈장 1만1400명, 건국포장 1392명, 대통령표창 3893명 등 총 1만6685명(여성 526명)에 달한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국내외 소장 자료를 지속 수집해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다양한 유형의 독립운동 사례를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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