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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갑부 베레조프스키의 죽음..제 2의 트로츠키?

[편집자주]

© AFP=News1

23일(현지시간) 망명지인 영국에서 숨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사인은 일단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결론날 전망이다. 그간 크레믈린 또는 영국 정보부(MI5)에 의한 암살 가능성이 제기돼 왔지만 25일(현지시간) 영국 경찰이 부검을 통해 "'제3자 개입'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타살설은 확산이 힘들게 됐다.

서방 언론들이 현재 주목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를재벌)' 베레조프스키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다. 타살 여부에 관계 없이 베레조프스키 사망 이후 이 두 인물의 '애증관계'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언론에 의해 다뤄지고 있다. '애틀랜틱'지 등은 베레초프스키와 푸틴을 각각 트로츠키와 스탈린에 비유하고 있다.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러시아 붉은 군대의 창시자인 레프 트로츠키는 레닌 사후 이오시프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 '인민의 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국외로 축출됐다. 망명지였던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암살자에 의해 살해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도 스탈린에 의한 암살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베레조프스키는 걸출한 혁명 이론가 였던 트로츠키와는 삶의 궤적이 달랐지만 크레믈린과 '러시아인 주류(Russian Majority)'에 의해 인민과 국가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체첸 테러리스트에 의한 납치사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아) 폭력사태 등의 배후에는 늘 베레조프스키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곤 했다. 심지어는 록밴드 '푸시 라이엇' 이 반푸틴 공연을 벌여도 베레조프스키가 뒤에서 이들을 막후 조종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러시아 주류의 미움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러시아 혁명의 주축으로 '레닌의 곤봉'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던 트로츠키도 권력투쟁에서 밀려나자 순식간에 '반동주의자', '수정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트로츠키 사후에도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말은 구소련권에서 가장 심한 욕설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지금도 북한이나 중국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통용되고 있다.

베레조프스키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정반대로 이뤄지기도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자에서 "베레조프스키는 영화 배트맨의 악당 펭귄 역할을 잘 수행했다"는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펭귄이 존재해야 배트맨의 정의가 부각된다는 설명이다.

전형적인 음모이론이지만 베레조프스키가 사실은 푸틴과 '파드되(pas de deux, 발레에서 두 사람이 추는 춤)'를 췄다는 주장도 있다. '안정적인 러시아' 이미지를 구축해온 푸틴이 '90년대의 구악' 베레조프스키를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부각하는데 이용했으며 베레조프스키도 이에 암묵적인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푸틴 1기 집권 초기에 반목하기 전까지는 서로의 별장에 수시로 방문해 가족모임을 가질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무명에 가깝던 푸틴이 보리스 옐친의 후계자가 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준 사람도 베레조프스키였다. 음모론자들은 이 둘의 결별에는 KGB출신 푸틴의 냉혹함이나 권력투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 등 미 주류 언론은 그를 "제 무덤을 판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는 서방 언론에 의한 '마녀사냥'의 측면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방측이 푸틴과의 관계를 좋게 이끌어 가기 위해 '공통의 적'을 설정한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베레초프스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6년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베레초프스키를 "크레믈린의 대부"로 묘사했다. 러시아 권력의 심장부인 '패밀리' 한 가운데 있던 베레조프스키는 이제 모국의 신문 '베도모스티'에 의해 "리어왕이 된 파우스트 또는 프랑켄슈타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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