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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국정원 수사 외압 혐의 무죄 이유는

권은희 주장 부정…"객관적 사실·다른 경찰 진술과 다르다"
"경찰들 말 맞춰" 검찰 주장 부정…"그런 사정 납득 어렵다"
김 전 서울청장 주장 대부분 인정…"증거 배척할 수 없다"

[편집자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왼쪽)과 권은희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오른쪽). © News1 한재호 기자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관련 경찰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6일 무죄가 선고된 가장 주된 이유는 검찰이 권은희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39·현 서울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진술에만 의존했을 뿐 다른 증거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전청장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이날 "다른 경찰들의 진실은 서로 일치하는데 권 과장의 진술만 이와 다르다"며 권 과장 주장의 신빙성을 대부분 부정하고 서울청 소속 경찰들 증언의 신빙성은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우선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 오피스텔 압수수색이 보류된 사정 ▲노트북·데스크탑 컴퓨터 분석과정에 김씨를 참석시켜 김씨가 지적한 파일만 분석하려 했다는 의혹 ▲중간수사 결과 발표 후 의도적으로 분석결과물 회신을 지연했다는 의혹 등에 대해 모두 권 과장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 오피스텔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이 보류된 사정에 대해 권 과장은 검찰조사, 국회의 국정조사 등에서 재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김 전청장이 영장을 보류하라는 전화를 했다"며 외압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기용(57) 전 경찰청장의 방침에 따른 것일 뿐 김 전청장의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기록을 보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러간 수서서 소속 경찰들은 당일 오전에 이미 경찰청의 지침을 전달받은 이광석 전 수서서장으로부터 영장보류 지시를 받았다"며 "김 전청장이 이날 오후 권 과장에게 직접 전화해 재차 보류를 지시했다는 것은 다른 경찰들의 진술과 명백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권 과장은 재판 도중 노트북 등 분석 당시 김씨를 참석시켜 김씨가 지적한 파일만 분석하려 해 항의의 표시로 수서서 소속 경찰을 철수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도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CCTV 녹화영상을 보면 서울청 분석관들이 김씨와 김씨의 변호인에게 '모든 파일을 열어봐야 한다'고 설명·설득하는 내용이 나타난다"며 "권 과장이 철수시켰다는 수서서 소속 경찰도 '철수는 (항의의 표시가 아니라) 나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서서가 1차적으로 송부된 하드디스크를 보면 당시 분석과정에서 추출된 김씨 사용 아이디·닉네임 목록이 명확히 적혀 있어 권 과장 주장과 명백히 배치된다"며 "검찰이 무엇을 근거로 판단해 공소를 제기한 것인지, 특정인 진술만 지나치게 믿어 객관적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권 과장을 제외한 다른 경찰들이 검찰조사 이후 서로 말을 맞춰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다는 검찰 측의 주장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0월 열린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서울청 소속 분석관에게 "조사 당시 '감찰팀에 조사내용을 얘기해야 한다, 어떤 내용들은 조서에 안 남겼으면 한다,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추궁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검찰조사에서 일부 애매했던 사정이 법정에서 명확해졌을 뿐 진술을 번복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직급, 위치, 개인적 성향 등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경찰들이 상당한 시간을 두고 모의해서 허위로 짜맞췄을 것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재판부는 수사과정·발표과정의 축소·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김 전청장과 서울청 소속 경찰들의 주장을 거의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수서서에 증거 분석상황을 은폐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언론은 물론 경찰 외부에 수사상황이 유출되는 것을 막자는 점에서 보안을 강조한 것이라고 판단했고 ▲일부러 김씨 노트북 분석범위 제한을 지시해 수사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서울청 분석관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봤다.

또 ▲수서서에 키워드 축소를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선거와 무관된 단어도 많아 효율적 분석을 위해 축소한 것이라고 봤고 ▲발표할 수사결과가 미리 정해져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서울청이 미리 특정한 의도를 갖고 결론을 정해놓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논지들을 바탕으로 "불신과 의혹만을 전제로 김 전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증거를 배척할 수 없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공정하게 판단할 법관으로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김 전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거의 유일한 증거였던 권 과장 주장의 신빙성이 부정되면서 반년을 끌어온 김 전청장에 대한 1심 재판은 이날 결국 '무죄'로 끝을 맺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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