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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에 연대보증, 고금리까지.."비올 때 우산 뺏기는 기업"

현대그룹 자구계획 이행 차원 현대증권 신탁 매각
주식담보에 연대보증, 이자도 7%...동부제철CB는 10%

[편집자주]

/뉴스1 © News1 박철중 기자


자구계획을 추진하는 현대·동부그룹 등이 금융권으로부터 고금리에 불리한 담보 조건을 강요당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주식 담보에 연대보증을 세우고 일반 담보대출보다 높은 연 7%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다. 동부제철은 회사채에 주식전환 권리를 부여한 전환사채를 통상적인 금리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으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비 내릴 때 우산을 뺏기는 상황이지만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자금 지원안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마저 받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해당 기업들이 중장기적인 이자 부담에 시달리고 알짜 사업도 매각해 성장동력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등 금융3사를 재산신탁방식으로 매각키로 KDB산업은행과 합의했다. 현대상선은 신탁 조건에 따라 산업은행으로부터 2000억원의 자금을 선 확보했다.

신탁방식 매각은 신탁회사와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지분을 넘겨 매각하는 방식을 말한다. 현대상선은 신탁회사에 현대증권 지분 22.4% 중 일부인 14.9%를 맡기고 신탁회사는 현대증권 지분을 근거로 SPC(특수목적회사)에 수익증권을 발행한다. KDB산업은행은 다시 SPC가 가진 수익증권을 유동화해 자산담보부대출(ABL)을 일으킨다. 자산담보부대출은 약 2000억원이며 이 금액은 현대상선에 우선 지급된다.

자산신탁회사 및 SPC를 동원했으나 결국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킨 셈이다. 다만 현대증권이 매각될 경우 신탁회사를 통해 산업은행이 ABL 발행금 2000억원을 우선 확보하고 나머지 지분 매각 대금만 현대상선에 유입된다.

현대그룹 측은 "그룹에 2000억원의 현금이 유입돼 유동성 우려 불식 및 재무안정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난 12월 3조3000억원의 자구안을 발표한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60% 이상의 자구안을 이행해 조기에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그룹과 산업은행은 단기자금 확보를 위해 이같은 금융기법을 도입키로 했다.

재계에선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을 명목으로 고금리 대출을 시행한 것이란 지적도 일고 있다. 정상적인 기업이 담보대출을 일으키면서 7%대 금리를 부담할 리 만무하다. 더욱이 모회사가 연대보증까지 할 경우 금리는 더 내려가기 마련이다.

현대상선은 이번 신탁구조 자금 확보를 위해 SPC에 214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을 제공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현대증권 지분 14.9%(시가 감안시 약1800억원)을 담보로 잡고 여기에 다시 2140억원 규모의 연대보증까지 더했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도 통상적인 담보대출보다 높은 7%의 금리를 책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신용등급 강등 탓에 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점은 인정해도 담보에 연대보증까지 세우고 7% 금리를 책정한 것은 과했다"며 "금융권이 자금 지원이라고 하지만 금융 회사는 위험 부담을 전혀 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부제철도 최근 정상 상황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동부제철은 지난 8일 3년만기 조건으로 48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해당 전환사채는 회사채 신속 인수제에 따라 발행하는 회사채 차환발행액 중 일부를 자체자금으로 상환하기 위한 것이다.

동부제철이 발행한 전환사채는 금리 연10.83%에 주당 5000원으로 동부제철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만기까지 연10%가 넘는 이자를 고스란히 받고 동부제철 주가가 상승할 경우 주식으로 전환해 매매차익을 누릴 수 있다.

전환사채는 주식 전환 옵션 때문에 통상적으로 일반 회사채보다 금리가 낮다. 동부제철은 일반 회사채에 비해 높은 금리로 전환사채를 발행해 이자 부담을 키웠다.

자금 사정이 어려워 신용등급이 낮아진 기업에게 높은 금리를 받는 것은 시장 경제에서 당연한 일이다. 해당 그룹도 정상적인 상황에선 자금 조달이 어려운 만큼 고금리여도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금융권은 위험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 기업 부담을 키우는 것은 기업 구조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고금리 자금 조달이 자칫 부메랑이 돼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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