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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뜨고 상인들 울고…"19년 일군 가게 200만원에 나가라니"

땅값 오르니 임대료도 올라…상인들 "임대인·임차인 상생방안 촉구"

[편집자주]

<br />서울 종로구 서촌 상인 20여명이 27일 오전 11시 효자동 오수자씨의 빵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종로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News1

서울 종로구 서촌 상인 20여명이 27일 오전 11시 효자동 오수자씨의 빵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종로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News1
"남편 퇴직금으로 일궈 19년 이어온 가게인데…200만원 받고 나가랍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경복궁 서쪽 마을인 서촌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오수자(65·여)씨는 13평 넓이 가게를 찬찬히 둘러보며 말했다.
   
오씨는 경찰 공무원으로 25년간 근무한 남편 박재권(73)씨가 받은 퇴직금으로 1997년 효자동에 빵집을 열었다.
 
"19년을 했어요. 지금 일하는 제빵 기사도 여기 옆에 초등학교를 나왔다니까요."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이 빵집은 오씨와 남편, 아들, 며느리, 손자들까지 19년간 여섯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그러나 오씨 가족은 당장 대책이나 별다른 생계 수단 없이 거리로 내몰려야 할 처지다. 오씨 가게가 있는 서울 종로구 서촌이 소위 '떴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서촌도 피해갈 수 없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구도심이 번성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대학로, 인사동,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성수동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다.
 
북촌과 서촌은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옥 밀집지역인 이곳 지역을 '보존지역'으로 지정하면서부터 관광객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땅값이 오르자 임대인들은 임대료를 올리면서 임차인들에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이 영세상인인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수퍼마켓, 우유보급소, 세탁소, 신문보급소들이 사라진 자리는 카페, 레스토랑 등이 채우기 시작했다.
 
오씨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10월 임대인은 "구청에서 안전진단을 받아보니 '건물이 노후화 됐다'고 해서 리모델링 후 직접 사용하려고 한다"면서 "이사비 200만원을 줄테니 즉시 가게를 나가달라'고 요구하고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오씨는 "2014년 10월 이후 총 세 차례 내용증명을 받았으나 우리가 응하지 않자, 임대인은 강제 퇴거 집행을 신청하기 위해 2015년 5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오씨는 "임대인이 처음에는 '건물 노후화와 리모델링'을 퇴거의 명분으로 들었는데 법원에 가서 보니 전혀 달랐다"며 "실상은 자녀에게 프랜차이즈 카페를 개업해주기 위함이었고 퇴거 명분으로는 '임차인의 임대료 연체'를 들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임대료와 관련해 "2010년 임대인이 임대료를 갑자기 올려달라고 요구해 2~3번 정도 밀린 적이 있지만 나중에라도 다 지급했다"며 "임대인이 강제퇴거를 집행하기 위해 임대료는 물론 하지도 않은 구청의 안전진단까지 문제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에서는 임대인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주택임차보호법에 따르면, 2회 이상 임대료가 연체되었을 경우 이러한 연체 사실만으로도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오씨는 "법으로는 문제 없을지 몰라도 19년이나 장사를 잘 해 온 사람들에게 도의상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계속 장사는 할 수 없더라도 우리가 직접 다음 임차인에게 양수·양도를 할 수 있게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오씨의 아들 박성진(44)씨는 "지난 5월 건물주들이 임차 상인을 권리금 한 푼 없이 쫓아내는 것을 막기 위해 '상가권리금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기 서촌 상인들 대부분이 그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빵집 바로 옆 건물에서 30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채점례(65·여)씨는 "같은 임대인에게 임대료를 내고 있다"면서 "10여년 간 남편의 병원비를 대느라 임대료가 몇 번 밀린 적이 있는데 임대인이 그걸 가지고 쫓아내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씨는 "이 동네 상가 상당수를 그 사람이 갖고 있어 같은 위기에 처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고 했다.
 
이렇게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오래된 삶의 터전을 내 줄 위기에 처한 상인 20여명은 27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효자동 오씨의 빵집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종로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서로 잘 지내야 할 임대인과 임차인이 싸우게 만든 건 정부와 서울시, 종로구의 행정 실패"라며 "서울시가 지난 3월에도 임차인 대책을 내놨지만 그 이후로 바뀐 게 없고 여전히 상인들은 거리로 내몰릴 위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서울시가 23일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발표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이를 통해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서촌의 영세 상인들 문제부터 해결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을 이뤄낼 수 있도록 확실히 중재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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