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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세대, 한국문학을 '개저씨 문학'으로 부른다"

오혜진 문화연구자, 젊은층 입장에서 기존 한국문학 비판

[편집자주]

© News1


기존의 한국문학을 '개저씨 문학'이라고 비판하는 젊은층의 목소리를 담은 평론이 발표되면서 문학에서의 '세대논쟁'의 불이 댕겨졌다. 최근 발간된 계간지 '문화과학' 봄호(85호)에 실린 오혜진(31) 문화연구자의 글 '퇴행의 시대와 'K문학/비평의 종말'이라는 글이 바로 그 논쟁의 도화선이 됐다. 

글의 요지는 '지금까지의 주류문학이 '계몽주의, 가부장주의, 시장패권주의, 순문학주의와 같은 퇴행적 성격을 가졌으며 이같은 성격이 자신들의 문학과 세계에 대한 인식과 심하게 동떨어지기에 젊은 독자들이 기성문학을 '개저씨 문학', 좀 완곡한 표현으로는 자조적 의미의 'K문학'이라고 부르며 외면한다' 는 것이다. 

개저씨는 '개+아저씨'라는 조어로 주로 '자신의 나이와 지위를 무기로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40대'를 의미한다

'퇴행의 시대…'는 지난해 여름 신경숙 표절사태와 문학권력 논쟁에서 침묵하는 듯 보였던 젊은 작가와 평론가들의 한 중요한 입장을 대변한다는 데서 의미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논점이었던 '표절이냐 아니냐', '문학권력이 어떻게 작동했느냐'는 이들에게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혜진의 글은 그같은 논쟁이 딛고 있는 혹은 감추고 있는 '욕망'을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낱낱이 분석하고 있다.   

'퇴행의 시대…'는 지난해의 문학권력 논쟁에서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보인 문학이라는 '신앙'을 지키려는 태도, 한국문학을 구원하기 위한 비평 정신의 회복을 강조한 점, 그리고 여전히 차세대 문학에이스 발굴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문학권력과 함께) 퇴행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패권주의적인 욕망을 공유한다"고 본다.

또한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측에 대해서도 '문학이 산업이 아니며 예외적이고 특별한 장이라며 방어한 점'을 들면서 기성 주류문학이 누구라 할것 없이 한국문학의 퇴행적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았다.

오 문화연구자는 '세대' '젠더' '생산하고 향유하는 문학의 성격'이 기존 (순)문학과 젊은 작가·독자와의 냉담한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

그는 "문학권력 비판론자들이 1990~2000년대 문학의 몰락을, ‘가시화된 전선이 사라지면서 운동성을 잃어버린 채, 그저 텍스트를 통한 간접경험만을 문학적 자원으로 삼은 세대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주장했다"면서 "특정 세대의 체험에 대한 위계화를 통해 문학(사)의 가치화를 시도하는 이런 인식은 기실 악명 높은 ‘20대 개새끼론’에 깃든 반동성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비판했다. 

기성문학이 갖는 '시대착오성' 역시 비판된다. 오혜진은 "문학이 사람들이 관심갖는 이슈에 대해서 한발 앞서나가야 하는데 오히려 뒤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라는 한 젊은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이어 지난 1월부터 3개월이나 지속된 '악스트-듀나 인터뷰 사태'에서 나타난 순문학 작가들의 장르문학에 대한 몰이해, 명백히 동성애 코드의 작품들인 영화 '캐롤'과 윤이형의 소설인 '루카'를 애써 '인간의 보편적인 사랑'으로 환원시키는 기성 비평가들의 태도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소설가 한강에 대한 과열된 반응 역시 도마에 올랐다. 오 연구자는 노벨문학상 등 세계적인 인정을 위해 에이스발굴에 골몰하며 신경숙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냈으면서도 다시 '소설가 한강 등을 매개로 K문학/비평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일련의 움직임들'을 보이는 한국문학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오혜진 연구자의 글이 지난주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글의 '도발적인' 관점과 문학권력 비판자들에 대한 비판이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SNS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문학권력 비판자들의 일부는 '개저씨'라는 표현이 '반지성적'이라고 반발했다. 

김명인 문학평론가는 "기성문인들을 싸잡아 문학적 순정파로 몰고 다시 이들을 20세기 계몽주의자로 낙인찍은 후 이를 젊은세대가 선호하는 문학과 대립시켰다. 이렇게 하여 표절사태에 관해 발언한 비평가 일반을 '개저씨'와 같은 급으로 몰아갔다"면서 '허점투성이의 일반화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젊은세대 독자들, 그리고 장르문학 독자들의 한국순문학에 대한 불신이 뿌리가 깊다"는 점에 동의하는 입장도 있었다.  또 오길영 문학평론가는 "젊은 독자를 잃은 한국문학/비평은 장르화된 방식으로만 겨우 존재하면서 영원히 그들만의 은어 혹은 방언으로 남을 것"이라는 오혜진의 비판에 대해서 '뼈아픈 지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오길영 평론가는 "(문학권력 비판자들이) 우리나라 문학을 세계문학과 비교한 것은 '문학 에이스'의 필요성을 말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면서 "유럽과 미국, 일본의 문학작품이 번역돼 시장에서 한국문학과 경쟁하고 있는 현실에 관해 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1과의 통화에서 오혜진은 글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젊은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외면하면서도 외국문학이나 장르문학을 선호하는 것을 보고 '한국문학에서 결여된 것이 뭘까' 생각하며 그 비평적 화두를 제시하고자 했다"면서 "기존과는 다른 비평적 틀이 필요하다고 쓴 것이지 비평무용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또한 "'개저씨 문학'이라는 용어는 한국문학을 이렇게 부르는 젊은 세대를 징후적으로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며 장르문학과 팬픽(팬이 만드는 2차창작물) 등을 한국문학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도 아니다"면서 오 연구자는 "내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생각하지 않은 방향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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