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세월호청문회-녹취록③]둘째날(2일)…국가조치의 문제점

[편집자주] 1~2일 진행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제3차 청문회 둘째 날 발언의 주요 부분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 둘째날 녹취록
장소: 서울 마포구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일시: 2016년 9월2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이석태 위원장 인사말
"실제 주최자의 형식은 특조위지만 특조위는 유가족, 국민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특조위가 하는 청문회 주관은 방청석에 와 계신 분들이라고 본다. 특조위 전체를 대신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유관기관 공무원들이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속상하겠지만 정숙 유지해주시고 청문회가 잘 진행되기 위해 협조 부탁드린다."

◆4·16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를 대하는 국가조치의 문제점(제1세션)

@신현호 특별조사위원
"2년이 지났다. 얼마나 바뀌었나. 세월호참사 당시 드러난 문제점을 파악하고 원인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전히 정부는 진상규명 방해하는 상황, 피해자들이 어떤 일 겪은지 모르고 있거나 잊은 국민도 많다. 어제 이어 오늘도 국민의 세금으로 고액연봉 받는 공무원들은 출석하지 않았다. 청문회 불출석은 국민에 대한 봉사의 책임을 져야할 공무원의 기본의무 저버린 위법한 행위다. 불출석은 이 자리에서 밝혀지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자백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봐도 된다고 간주하겠다. 경험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참사 현장에서 경찰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문제점을 확인하겠다."

@신현호 특별조사위원->참고인 5명
-모두 현장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안다. 허위과장 부분에 대해 질문하겠다. 참사 직후 참고인들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이들의 생사 여부였을 것이다. 참고인들에게 구조수색 상황에 대해 정보 제대로 전달 됐는지.

@전명선 참고인
▶연락을 받고 이동했던 곳은 팽목항. 도착은 오후 3시경. 도착했을 때는 해경이라든가 119구급대 혹은 폴리스라인이라든가 또는 안내를 할 수 있는 어떤 관계부처도 현장에 없었다. 그래서 진도체육관으로 이동해 3시30분경 도착했다. 체육관에는 상황실이 꾸려져 있었고 그 안에 내 아이 명단이 없는 걸 확인하고 저는 진도 부군수를 통해서 인근 섬이나 구조된 아이들이 이동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늦어도 2시간 내에는 아이들이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어떠한 안내나 보고, 전파 받을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정혜숙 참고인
▶아이 명단 없는 걸 확인했다. 당시 첫 브리핑을 했다. 최선을 다해서 구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0명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곧 진도체육관으로 데려올 것이다. 그러니 기다리라 그랬다. 그 때 생존한 한 명이 마이크를 뺏고 저들의 말을 단 1%도 믿지 말라고 하면서 1시간 동안 구조할 동안 저들은 지켜만 봤다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했다. 이에 분노한 가족들이 팽목항으로 가겠다고, 현장 가겠다고 했다. 배와 헬기 내주겠다던 해경은 도착하자마자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면서 현장 가는 걸 막고 지연시켰다. 민간어선과 잠수사를 사서 가는 일이 벌어졌다.

@신현호 위원
-수색 구조상황 제대로 이야기해주는 사람 없어 답답해서 가족들이 직접 갔다는 얘기를 대한변협 진상조사위원회로부터 들었다. 침몰 현장 상황은 어땠나.

@정혜숙 참고인
▶현장에 가는 도중에 배 안에는 철근이 널부러져 있었고 아이들 신발, 슬리퍼, 컵라면 등이 둥둥 떠있었다. 가면서 TV를 통해 본 대대적인 구조활동과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본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해경 등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이 너무 놀랐다. 그래서 함께 간 기자들에게 제발 부탁한다고, 있는 그대로 보도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오는 뉴스는 현장의 모습과 달랐다.

@최경덕 참고인
▶17일 낮에 집사람과 도착했다. 아이가 가장 가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피정을 타고 사고해역으로 들어갔다. 그 시간이 17일 오후 5시다. 그렇게 도착하니 세월호에서 200~300m 떨어진 곳에 배가 멈추고는 작전에 방해가 된다. 못 들어간다. 그렇게 말했다. 거기서 20~30분 정도 머물렀다. 볼 수 밖에 없었다. 피정과 고무보트 몇 대 만이 있었다. 20~30분 후에 경찰 배에서 이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팽목항에 복귀해야 한다 했다. 그 과정에서 주변 다른 배에 타고 있던 민간잠수사 세 분이 제가 있던 배에 옮겨 탔다. 민간잠수사였고 17일 오전 3시경에 왔다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오전 3시경에 와서 오후 7시가 다 됐는데 바다에 한 번도 못들어갔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더라. 수색하고 구조하고 싶어서 왔는데 경찰이 배만 옮겨 타라고만 했다더라.

@신현호 위원
-조명탄을 이용한 언론보도 자료 보겠다. 심해잠수를 하려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밤에 작업을 하려면 조명탄이 있어야 한다. 언론에서는 활발하게 구조작업 중이라고 말했는데 매우 제한적인 수색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해경이 피해자한테 알려준 적이 있나.

@유호근 참고인
▶그 당시 참사해역에서 해경은 피해자들의 질문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고 사고 현장에서 가족들의 질문에 답해준 건 민간잠수사 중에서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감독관 뿐이었다. 해경은 아무런 설명 없었다.

@권미화 참고인
▶다른 곳에서 가져와야 되고 시간 오래 걸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 조명탄 한 방을 터뜨리는데 언론에서는 정부가 엄청 힘을 쓴 것처럼 보도됐다. 그래서 단 한 번 만이라도 조명탄 발사를 해달라고 하니 부천에서 조명탄을 구해야 한다고 들었다.

@전명선 참고인
▶해경이나 어느 부처를 통한 공식 브리핑은 전혀 없었다.

@신현호 위원
-구조상황 보고서 보면서 말씀드리겠다. 해양경찰청에서 나온 4월19일 보고 상황. SNS 보고 상황이다. 이는 오보에 대한 대응이라기 보다는 SNS 동향 파악으로 보인다. 현장 수색활동 사진, 영상 트윗해 국민적 응원 분위기 추진한다 이러게 돼 있다. 당시 상황이 국민적 응원 받을 상황이었나

@유호근 참고인
▶19일 참사해역에서는 정말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날 사고해역의 날씨가 안 좋아서 모든 배 철수해야 된다고 통보를 받아 우리는 철수했다. 우리는 참사해역을 지키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이라 남고 싶다고 사정을 했지만 방법이 없다며 철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 SNS 홍보 하는 상황이 어이가 없다. 우린 선장에 호소했다. 세월호만 바라볼 수 있게 해달라. 날씨가 안좋아서 철수했는데 낚시배는 남아있더라. 아이러니하다.

@신현호 위원
-당시 침몰 상황과 SNS 내용이 완전 달라 분노했던 가족들이 많았나. 그때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보도해 달라 한 적은 없는가.

@권미화 참고인
▶사고해역 근처에서 배를 묶어 놓은 곳에서 모 기자가 잔잔한 파도였는데 엄청 큰 파도인 양 연기를 하며 녹화를 하고 있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로 엄청 노력해서 대대적 구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만 했다. 그들은 직접 현장도 못갔을 때다. 오히려 외신에서 제대로 알린 것으로 기억한다.

@정혜숙 참고인
▶현장에서 기자에게 빌다시피 하도록 진실을 보도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근데 단 한자도 가족들의 편에서 나온 것 없다. 우는 모습, 쓰러지는 모습 등을 연출하는 모습만을 봤다.

@신현호 위원
-18일에는 에어포켓 공기주입이 있었는데 현장에 있던 참고인께서 직접 본 상황인가.

@유호근 참고인
▶모든 공기가 물밖으로 몇시간 동안 나오는 것을 계속 봤다. 그 과정에서 공기주입 하다가 터진다. 세월호가 밑으로 가라앉아서. 하나는 물속에 잠겨 있어서 나중에 나오고 줄도 다 끊어졌다. 에어포켓을 유지하려다 벌어진 일이다.

@신현호 위원
-당시 에어포켓에 대해 어떻게 얘기를 들었나. 모두 찬성을 하셨는지, 가족들의 논의과정이 있었는지

@최경덕 참고인
▶에어포켓 확보를 위해 공기주입을 할 수 있다. 더 많이 만들어서 생존확률 높일 수 있다. 근데 그 에어가 잘못돼서 세월호 특정부분에 공기가 더 들어가면 세월호 침몰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단점 말했다. 그러더니 "그럼 어떻게 할까요"라고 가족에게 물었다. 해경이나 에어포켓 관련 전문가들은 "장점이 더 많으니 주입하겠습니다" 이런 설득이 아니라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다. 가족들은 답을 정할 수 없었다. 판단을 할 수 없는 저희들에게 그렇게 질문했다.

@신현호 위원
-에어포켓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도 안됐고, 제공하는 사람도 현장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설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해 있었을 것 같다.

@전명선 참고인
▶해경 관계자들은 팽목에서 최장 62시간 살아있던 적이 있다고 브리핑 했다. 결론은 언론 잠재우고 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한거다. 에어포켓은 가족들을 가로막고 자기들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유가족 상대로 한 에어포켓, 공기주입은 쇼였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신현호 위원
-결국 재난현장에 있어서는 나쁜 소식이라도 언론에 정확히 보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해경은 이를 은폐하고 과장된 언론플레이를 했고 언론은 그를 그대로 보도해서 피해자들을 화나게 했다. 증인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정리한 내용만이라도 말씀드리겠다. 4월19일까지도 잠수나 선내 수색이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장에서 봤던 잠수사들 진술과도 일치한다. 해경녹취록을 보면 오후 3시가 선체에 잠수부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큰일났네 큰일났어" 하는 내용을 주고 받는게 나오고 같은날 저녁 6시에도 "선내 진입하지 못함" 이라고 명확하게 보고 하고 있다. 그러다 잠수요원 160명이 보고 상에 갑자기 등장, 4월16일 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뻥튀기가 시작된다. 실제 그 과정에서 해경 관계자 조사해보니 다른 보고서와 달리 당시 보고서는 해경 지휘부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만들어졌다. 담당자도 그 내용은 문제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의도적이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해경청장이 진도체육관에서 500명 잠수사 투입을 얘기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해경청장도 그런 표현에 문제가 있단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해경 관계자들은 18일, 19일까지 브리핑때 계속 몇 백명 투입했다는 말을 썼다. 정보보고 자료 보면 지속 모니터링 하면서 SNS 대응 이런 내용을 국민적 응원 분위기 추진 등으로 홍보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무리 하도록 하겠다. 참사당시 구조수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정부와 해경지휘부도 알고 있었지만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있다고 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하는 모든 과정을 볼 때 불신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생존자 면담했을 때의 공통된 진술이다.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한 것이라 한다.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 한다. 마지막까지 해경 기다린 희생자에게 대통령께서는, 나를 정부를 믿어준 희생자들에게 감사한다 더 나은 여건 만들겠다 믿고 따라와라 그런 감사의 말을 꼭 해주셨으면 한다.

@권영빈 위원
-구조구난 상황 이후 경찰 역할에 대해서 물어보겠다. 그 전에 증인들 불출석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이 자리에서 얘기할 내용에 대해 증인들은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겠나. 이런 생생한 내용들을 듣고 증인을 바라볼 용기조차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한다. 특조위가 입수한 공문에 의하면 참사 초기에 매일 해경과 정보관들이 피해자 지원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1차 청문회때 해수부 장관도 증언했던 내용이다.

@최경덕 참고인
▶정보과 직원인지 몰랐고 17일부터 있었다. 체육관 안에는 정복을 입지 않아 경찰이라고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17일날 대통령이 올 때 알았다. 사복경찰이 체육관 입구에서부터 단상까지 대통령을 둘러싸고 가로질러서 갔다.

@권영빈 위원
-그럼 초기에 피해자, 자원봉사자들 이런 거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안내하고 이런 역할을 하는 경찰은 있었나.

@최경덕 참고인
▶아무도 없었다. 기자들과의 싸움에서도 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사복경찰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위험을 방치했다.

@정혜숙 참고인
▶당시 어머니들이 울부짖고 그럴 경우 여경들이 들어오고 그런 것만 봤다. 대부분이 눈빛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상황이 됐는데 슬픔을 간직한 눈과 누군가를 감시하는 눈의 차이를 알게됐다. 사복경찰 대부분은 등산복을 입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간혹 무엇인가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적기도 했다. 그래서 뭐하냐고 하면 "2학년 5반 누구 아빠"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장소에서 물어보면 "12반 누구 아빠다" 이렇게 말하더라. 그런 일들이 허다하게 있었다.

@권영빈 위원
-참사현장 질서유지 거의 안 이뤄진 것 같다. 유가족 사칭에 회의 참석까지도 했다. 그래서 가족들 스스로 명찰을 만들어서 가슴에 달았다고 하더라. 적법적으로 활동하려면 정복 착용을 해야된다. 경찰공무원법 법령에도 있다. 다만 경찰 복제에 관한 규칙을 보면 정보, 보안 또는 외사에 관한 부분에서는 근무 중 사복 착용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만약에 경찰이나 이주영 장관이 말한 대로 장례지원이나 피해자 지원위해 100명씩 왔으면 정복을 입었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분들의 말을 보면 정복 입은 사람 없고 사복만 있었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 (당시 자료화면 보여주며) 사복근무 강조하고 있다. 사복입고 내려가라 하면 당연히 신분을 숨겨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피해자 지원업무라는 건 밖으로 얘기할 때고 실제는 은밀한 정보수집, 동향관찰, 이런 업무를 수행하라고 그렇게 내려보낸 것 같다. 수사 받아야 할 대상들, 진실 밝혀야 할 조사 대상자에 대해선 경찰이 보호를 했다. 그러면서 정작 피해자 보호 조치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전명선 참고인
▶각 경찰서, 경찰청 통해서 2달에 한 번씩은 통화내역이 조회된다. 이런 부분은 해경과 정보관들이 보호차원이 아니라 감시를 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권영빈 위원
-참사 초기 경찰정보 동향 보면 단순히 피해자들이 몇 명이 모여서 어디에 대기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아니라 대정부 반발, 정부비방 발언 등이 있는지 이런 것만 관심을 갖고 있다. 도대체 피해자 가족들을 전부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하는 거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도 하게 된다. 참사 초기 이후에도 경찰의 대응은 사실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경찰은 피해자들의 요구에 무조건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해 물리적으로 막기만했다.

@권미화 참고인
▶최근 분향소에 당직을 서다가 화장실 가려고 나왔는데 주차장에서 차량번호 조회를 하더라. 지금까지도 사찰, 감시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편하고 기분 나쁘다.

@최경덕 참고인
▶청와대 민원실에 가족대표로 민원을 넣으러 갔다. 그런데 경찰이 틀어막고 민원 넣지 말라고 했다.

@정혜숙 참고인
▶저희들은 너무 많은 공권력의 사찰을 당해서 가슴이 아프다. 지난해 대통령 면담요청을 하러 상경했다. 하지만 당시 청운동 동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차벽이 설치돼 있었다. 1주기 헌화 때는 광화문 일대에 차벽이 설치됐고 경력으로 다 막혀 있어 서울 시민들도 다니기 힘들었다. 단순히 추모하기 위해서 였는데 경찰은 원천봉쇄했다.

@권미화 참고인
▶진압 세게 했다. 밀려서 심하게 다쳤다 그때 갈비뼈 4대가 나갔다. 당시 앰뷸런스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차벽이 쳐져 있었다.

@정혜숙 참고인
▶원천봉쇄를 얼마나 했는지 화장실 조차도 못가게 했다. 엄마들이 서로 가려주면서 노상방뇨하는 상황도 있었다.

@권영빈
-가족분들은 더이상 가만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행동으로 나섰는데 거기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대응이 이러하다. 마무리 말씀 부탁드린다.

@전명선 참고인
▶왜 참사가 일어났고 왜 희생됐는지 진상규명 해달라는 게 가족들의 바람이다. 안전 사회 만드는게 우리의 목표다.대한민국에 윤리와 도덕 가치관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이라도 경찰, 정부, 정부부처에서는 피해 가족들이 요구하는게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국민들 염원으로 만들어진 특조위도 끝까지 진상규명, 진실규명 할 수 있게끔 최선을 다 해달라.

@정혜숙 참고인
▶특조위가 만들어지고 특별법 만들어진 것도 국민들, 시민들의 힘이다. 시민들은 살아있고 것, 가슴뛰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시민들이 좀 더 나서주셔서 특조위, 특별법이 무산되는 일 없도록 강력히 부탁드린다. 무산된다 하더라도 진실만은 밝혀야 하는 일이고 기본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이번 세월호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하나 등한시 헛되지 않아야 한다. 모두 함께 힘 합치지 않으면 안되는 일 앞에서 여러분들이 좀 더 힘내주시고 국민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최경덕 참고인
▶지금 2년 넘게 지나왔다. 이 가족들이 어떻게 좀 살아야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이사람들이 이 상태로 계속 살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포기하고 떠날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다고 안된다고 이유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2년 동안 앉아 있기도 서있기도 걷기도 힘들었다. 이 사람들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꼭 한 가지라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랑스런 우리나라 대한민국 아닌가.꼭 부탁드린다.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