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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파문'에 국정교과서 흔들…공개 후 재검토 가능성도

'최순실 교과서' 이어 국정화 비판했던 총리 내정
현장검토본 공개는 예정대로…이후 일정은 안갯속

[편집자주]

역사학계 회원들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농단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16.11.1/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역사학계 회원들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농단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2016.11.1/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최순실 파문'으로 정국이 요동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도 흔들리고 있다. 최순실씨가 국정운영 전반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역사학계가 시국선언에 동참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에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국정교과서를 '최순실 교과서'로 규정짓고 폐기를 요구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었던 김상률 숙명여대 교수가 최순실씨의 최측근 차은택씨의 외삼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교과서 추진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혼' '기운'처럼 종교적 색채가 짙은 용어를 유독 내세웠다. 지난해 11월 국무회의에서 밝힌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에는 대통령의 발언을 이해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최순실씨가 국정운영 전반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반응이 많다.

2일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국무총리에 전격 내정되면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김 총리 내정자는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교육부는 계획대로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을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교육부 안팎에서 제기되는 예상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교육부 "국정교과서는 정권 아닌 교육 차원…예정대로"

우선 최근 상황이나 국민여론과 관계 없이 예정대로 내년 3월부터 중·고교에 국정 역사교과서를 보급하는 것이다. 기존 교육부 입장과 같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지난달 31일 간부회의에서 "국정교과서는 학생들의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총리는 이튿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 역사교과서는 차은택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전 청와대 수석의 주도로 이뤄졌고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한다"며 보류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부총리는 "국정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역사 공부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정권 차원에서 발간하는 게 아니라 교육 차원에서 발간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단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이 부총리가 '정권'과 관계 없는 '교육 차원'을 강조한 것은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을 계속 끌고나가기 위해 ''최순실 게이트와 일종의 '선 긋기'에 나선 측면도 있어 보인다. 

지난 1일 국회 교문위 전체회의에서도 이 부총리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발간되지 않으면 내년 학기부터 역사 교육을 실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교육적 측면을 고려해 중단은 어렵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 집필진 45명 중 유일하게 공개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도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최순실 게이트와 국정교과서는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 명예교수는 "검·인정이 2016년에 끝나니까 내년 3월부터는 새 교과서를 쓰기로 돼 있다"며 "그러니까 그거(최순실 게이트)하고는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교과서 개발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지금 와서 어떻게 하겠느냐"라며 "내년 2월에 인쇄해서 학교에 보급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6.11.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2016.11.1/뉴스1 © News1 허경 기자

◇현장검토본 공개 후 '1년 연기' 가능성도 제기…사실상 철회

'선 긋기'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안팎에서는 국정교과서 추진 동력이 이미 꺾인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현장검토본을 외부에 공개한 후 국민 여론을 들어 국정교과서 적용을 연기하거나 재검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교육부는 28일 현장검토본을 인터넷에 e-북 형태로 공개할 예정이다.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집필진 45명도 같이 공개한다.

12월까지 의견을 수렴한 후 현장검토본을 수정, 보완해 내년 1월까지 최종본(결재본)을 확정한다. 인쇄 작업을 거쳐 내년 3월 새학기부터 일선 중·고교에 배포할 예정이다.

한 교육부 직원은 "만에하나 방향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현장검토본도 공개하지 않고 끝내면 국민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현장검토본을 공개한 후 국민 여론이 비등하다면 방향을 달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국정교과서 자체를 아예 철회하기에는 부담스럽다고 보면 도입 일정을 1년 연기하는 방안도 교육부 내부에서는 거론된다. 교과서를 국정으로 하느냐 검정으로 하느냐는 교육부장관 권한이다. 내년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할 때 '1년 연기'는 사실상 '철회'다.

김 총리 내정자가 과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정적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부에서 제기하는 가능성 가운데 하나다. 김 내정자가 '책임총리'로서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국정교과서를 강행할 수 있겠느냐는 전망이 깔려있다.

실제 김 내정자는 지난해 10월22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국정화, 지금이라도 회군하라'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판했다. 김 내정자는 칼럼에서 "교과서를 국정으로 획일화하여 강제하기보다 현실이라는 또 다른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노력하라"고 지적했다.

당시는 국정화 강행을 놓고 논란이 뜨겁던 때였다. 비슷한 시기 이투데이 칼럼에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밀어붙이면 몇 해야 가겠지. 하지만 그 뒤는 어떻게 될까?"라며 "답은 분명하다.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총리직 임명 소감을 발표하고 임시 집무실에 잠시 머무른 뒤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11.2/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2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총리직 임명 소감을 발표하고 임시 집무실에 잠시 머무른 뒤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6.11.2/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교과서 보면 달라질 것?…현장검토본 공개 뒤 계속추진 기대도

다만 김 내정자는 언론 칼럼에서 검정교과서의 '좌편향' 문제도 함께 지적해 국정교과서 추진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동아일보 칼럼에서 "'좌편향' 교과서에 좌편향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주체사상 부분만 해도 그렇다. 비판적 문구가 한두 줄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북한 측 입장을 길게 소개하는 것만 해도 '좌편향'이다"라고 썼다.

"국정화가 다양성을 해치니 반대한다고? 그것도 믿기 어렵다. '좌편향' 5종이 90%, 또 다른 방향으로의 획일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보편적 국민정서와 거리가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는 왜 문제의식이 없나?"라고도 했다. 문구만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정부·여당이 내세운 논리와 비슷하다.

이투데이 칼럼에서도 김 내정자는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규정한 후,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어느 한쪽으로의 획일적 역사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집필 검증 채택 전 과정의 참여자들도 더욱 다양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지난 1일 국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는 진영 논리나 정치적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며 "현재 용어 하나하나에 대한 이념 편향성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 역사교과서가 공개되면 왜 시끄러웠나 싶을 정도로 한쪽에 치우치거나 오해 받을 만한 내용은 없을 것"이라며 "현안보고 때 내정자에게도 잘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시나리오다. '바람막이'가 사라진 현재, 교육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 직원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우리도 혼란스럽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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