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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산악회 여성은 왜 총을 들었나…엽기 복수극

40대 여성, 30대 여성에 엽총 발사 현장 후 검거
6년 다니던 산악회 제명에 앙심···"똑같은 고통 돌려주려고"

[편집자주]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탕! 탕! 탕!"

일요일이던 지난 11일 오후 1시30분쯤 서울 중랑구의 한 주택가 주차장에서 난데없이 세 발의 총성이 울려퍼졌다.

순간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차를 빼러 나선 30대 후반 여성 A씨가 허벅지에 두 발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예고도 없던 총격으로 평화롭던 주택가는 아수라장이 됐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하고 곧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119 구급차도 도착했다.

구급차로 실려가던 A씨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머릿 속에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A씨는 "처음 본 사람이다. 그냥 차를 빼달라고 전화가 와서 나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맞은편의 40대 중반의 여성 B씨의 손에는 기다란 엽총이 한 정 들려 있었다. 경찰에 현장에서 체포된 B씨는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 한차례의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의 악연 아닌 악연은 9개월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원수 2300여명의 유명 산악회 회원이던 보험사 직원 B씨는 지난 3월 산악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거제도 망산 등산 소식에 버스 좌석을 예약했다가 '망산이 별로'라는 지인들의 평가에 예약을 취소했다.

하지만 뒤늦게 마음이 변한 B씨는 다시 예약하려 했지만 이미 좌석은 매진된 상태였다. 화가 난 B씨는 자신이 예약했던 버스 좌석을 예약한 A씨의 글에 "왜 내 자리를 탐하느냐"고 댓글을 달며 감정싸움을 벌였다.

A씨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B씨의 악의적인 댓글은 계속됐고 운영진은 보다 못해 두 달간 B씨의 카페활동을 정지시켰다. 화가 난 B씨는 운영진에게 항의 쪽지와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고 결국 6년 동안 활동해온 산악회에서 영구 제명됐다.

6년 전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난 뒤 B씨가 상처입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시작한 산악회 활동이었다.

11일 오후 1시20분께 서울 중랑구 묵동 주택가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조모(39·여)씨가 유모(46·여)씨의 엽총에 맞아 다리 부위에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유모씨가 범행에 사용한 엽총. (중랑경찰서 제공) 2016.12.11/뉴스1
11일 오후 1시20분께 서울 중랑구 묵동 주택가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조모(39·여)씨가 유모(46·여)씨의 엽총에 맞아 다리 부위에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유모씨가 범행에 사용한 엽총. (중랑경찰서 제공) 2016.12.11/뉴스1

분노에 휩싸인 B씨는 "A씨나 운영진에게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겠다"며 복수를 다짐했다. 상대를 몸으로 제압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고 뭔가 위협적인 장비가 필요했다.

B씨는 확실한 복수방법을 궁리하다가 '엽총'을 떠올렸고 수개월 교육을 받은 뒤 9월 수렵면허와 총포 소지 허가를 취득했다. 그리고 산악회 카페 대화명을 토대로 A씨를 찾는데 또 2개월 정도를 보냈다.

지난 11월 7일 B씨는 A씨가 참여한 등산 뒤풀이 장소를 인터넷 카페에서 알아내고 미리 현장에 가서 기다렸다. 산행 사진과 대화명으로 A씨의 얼굴은 이미 확인한 터였다. B씨는 뒤풀이가 끝난 A씨를 몰래 쫓아 사는 곳을 알아냈다.

B씨는 곧바로 복수에 나설 순 없었다. 엽총을 사용할 수 있는 수렵기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달 뒤인 12월 11일 이른 아침 B씨는 엽총을 맡겨 놓은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2지구대를 찾아 "충남 공주로 사냥을 간다"며 엽총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B씨는 공주가 아닌 A씨가 사는 중랑구 묵동으로 향했다. A씨의 집 주차장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가 주차돼 있었다. B씨는 차량 앞유리에서 A씨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B씨는 "차 좀 빼주세요"라고 말했고 곧이어 A씨는 차 키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 두 사람이 9개월 만에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윽고 B씨의 손에 든 엽총이 격발됐고 비명과 함께 A씨는 그자리에 쓰러졌다.  

이를 목격한 주민이 신고하자 B씨는 두려움을 느끼고 "내가 사람을 쐈다"며 112에 직접 신고를 했다. 출동한 경찰에 B씨는 별다른 저항없이 검거됐다.

B씨는 경찰조사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방황하다 찾은 곳이 이 산악회인데, A씨 때문에 쫓겨나 내가 받은 고통을 돌려주고 싶었다. 죽이려 한 건 아니었다. 혼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A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지난 12일 살인 미수 혐의로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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