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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 보내면 다리 자른다"…'볼링계대통령' 비리수법에 충격

국가대표감독·부회장 군림하며 10여년간 전횡
스카우트비 꿀꺽·학부모 협박 1억3천만원 뜯어 도박

[편집자주]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네가 누구 때문에 컸는데 말을 안 듣냐. 내가 입만 열면 보낼 수 있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전기톱으로 다리를 잘라버린다."(K감독)

#"아직 현역이라 뭐라 답할 말이 없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기록에 대한 평가가 공정했으면 좋겠다."(선수)

#"너무 속상하다. 애가 운동을 열심히 해서 장학생이 됐는데 스카우트비를 구경도 못 했다. 관례가 그렇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학부모)

지난 10여년간  '볼링계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전 국가대표 감독 K씨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찰조서에 기록된 K감독의 발언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무섭다. 비록 K씨가 경찰에 구속됐어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나 자녀를 선수로 둔 학부모들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K씨는 2014년까지 볼링 국가대표감독을 지내는 등 최근 10여년간 국가대표감독, 볼링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볼링계를 좌지우지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선수를 탈락시키고 다른 선수를 출전시켜 메달 획득으로 연금을 받게 하는 것도 그에겐 어렵지 않았다.

볼링은 아시안게임의 효자종목으로 양궁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주 메달종목이다. K씨가 감독직을 맡을 당시에도 우리나라는 남자 3인조와 5인조, 마스터 종목 등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 모든 것이 K씨의 구상이었다. K씨는 2010년 2~5월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경기보고서를 조작해 경기력향상위원회에 제출해 선발전 1위와 3위를 한 선수를 떨어뜨렸다.

평가전(70점) 점수와 지도자(30점) 점수를 합산해 뽑는 국가대표 선발과정에서 K씨는 이들에게 지도자 점수 0점을 줬다. 이유는 간단했다. K씨는 1, 3위 선수들에게 "너희는 군대에 갔다 왔으니 군대에 가지 않은 선수에게 양보하고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말라"고 강요했다.

K씨는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경기 도중 선수에게 손찌검하며 폭언을 하는 등 물의를 일으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K씨의 영향력은 국가대표 선발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그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선수에게 압력을 넣어 원치 않은 실업팀에 입단시키고 스카우트비로 2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국가대표가 된 B씨(18)의 부모는 아들의 뜻에 따라 대학진학을 원했지만 어느 날 K씨의 연락을 받았다.

"돈을 벌면서 운동을 해야지 왜 실력도 없는 애한테 돈을 들여 운동하느냐. 실업팀에 가라. (아들) 몸이 망가지지 않는 한 국가대표로 키워주겠다."

B씨의 부모는 당시 다른 실업팀 감독에게 이 문제에 대해 상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계속 (볼링계에서) 운동을 할 텐데 (K씨에 돈을)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말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K씨는 실업팀 감독들에게 "(내가 작성한) 살생부에 들어가면 너희는 살아남지 못한다"라고 협박해 스카우트비를 가로챘다.

K씨가 이렇게 부모와 실업팀 감독들로부터 받은 돈은 1억3000여만원에 달한다. 이 돈은 K씨의 도박자금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K씨는 마카오와 정선 등 카지노에서도 학부모와 실업팀 감독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해 돈을 보내라고 협박했다. 사흘이 멀다하고 200만~300만원을 받은 뒤 그 자리에서 도박으로 탕진했다. 이렇게 K씨가 24명으로부터 받은 돈이 8272만원이었다.

K씨는 경찰조사에서 "볼링계를 잘 이끌어나가려 했을 뿐 협박은 없었다"라고 혐의를 일부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에 B씨는 말을 아꼈다. 아직 현역이기 때문이었다. B씨는 "혹시라도 피해를 받을 수도 있다"라며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 (대표팀 선발 등) 기록에 대한 평가도 공정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K씨에 대해서는 "딱히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없다"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B씨의 부모는 "(아들이) 군대에서 제대하고 이제야 나름대로 적응해 합숙훈련에 참여하고 있다"라면서 "얘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지 않겠느냐…"라고 말끝을 흐렸다.

K씨 비리를 인지하고 수사를 해온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공갈, 사기, 업무방해 등 혐의로 K씨를 22일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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