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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박근혜를 '증인석만은 거부하게' 만들었을까

특검 혐의 입증 어렵게 하려는 朴 선택이란 해석
특검도 재판 비협조적인 朴 모습 나쁠 게 없어

[편집자주]

박근혜 전 대통령 © News1 신웅수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 © News1 신웅수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5)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의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끝내 불출석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영장을 받아 강제 구인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불응했다. 전날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서도 다음 날이 되자 '몸이 아프다'며 못 나가겠다고 버틴 게 벌써 두 번째다.

증인석에 앉은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변호인 측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 두 달 가까이 재판을 받아오면서 입을 연 건 첫 공판에서 직업을 묻는 질문에 '무직입니다'라는 한마디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입을 열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눌변' 박근혜, 입을 다무는 게 합리적 선택

박 전 대통령이 결백하다면 가장 좋은 선택은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사실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뇌물을 받지 않았다고 법정에서 직접 반박하고 다른 증거들도 이를 뒷받침한다면 재판부의 무죄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재판부도 공소사실의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증언 하나하나를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법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만 하되, 불리한 내용은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그렇게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무죄로 이끈다면, 자신의 뇌물수수 혐의도 옅어진다. 그는 이런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이 그다지 달변가는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일 때도 비문이 많고 정해진 대본 외에는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과거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저서에서 박 전 대통령의 화법에 대해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들이 흔히 쓰는 '베이비 토크'"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증언대에 선다면 범죄 사실을 입증하려는 특검과,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할 수 없이 돈을 줬다고 주장하는 삼성 측 변호인의 질문 공세를 견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법무법인 천일의 노영희 변호사는 "증언할 때 자신도 모르게 불리한 말을 할지도 모르니 이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라리 특검의 혐의 입증을 어렵게 만드는 게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낫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뇌물 혐의 재판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에 합의했는지 여부다.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가 입을 다물면 특검은 박 전 대통령 등이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과 '안종범 수첩' 같은 간접 증거를 통해서만 입증해야 한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이 위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형사소송법상 증인이 구인 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이를 제재하거나 불이익을 줄 별도의 규정은 없다. 박 전 대통령은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눈을 감고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News1
지난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눈을 감고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News1

◇재판 비협조적인 朴 모습 강조하려는 특검 의도

이런 박 전 대통령의 이해관계와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협조하지 않는 걸 부각하려는 특검의 의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응하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특검이 강제력도 없는 구인 영장을 굳이 집행하려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손뼉도 두 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실제로 지난 5월 이영선 전 행정관의 재판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특검은 박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자 구인하려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건강을 이유로 난색을 나타내자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철수했다. 그가 드러누워 버리면 대책이 없다.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도 똑같이 나올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상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이경의 최진녕 변호사는 "특검 입장에선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지 않는 걸 '사법 시스템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주장할 수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이 반성하는 모습이 없다는 걸 강조해 그의 양형에 불리한 요소라고 호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선고되는 형량을 늘리려는 특검의 전략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오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모든 피고인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통령이 나오더라도 어차피 혐의를 부인할 텐데 이런 피고인의 주장을 재판부가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박 전 대통령은 출석하더라도 증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며 "안 나온 것이나 증언을 거부한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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