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고교 무상교육 2020년으로 연기…박근혜정부 전철 밟나?

교부금 교부율 1% 인상해 1학년부터 단계적 실시
조 단위 정책 수두룩…우선순위서 밀릴까 우려도

[편집자주]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뉴스1DB) © News1 송원영
한 고등학교 수업 모습. (뉴스1DB) © News1 송원영

문재인정부의 핵심 교육공약 중 하나인 고교 무상교육 도입 시기가 2020년으로 미뤄지면서 교육계 일부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책 우선순위에 밀리면서 박근혜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한 교육공약도 많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처럼 시·도 교육청 재정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1일 교육부와 국정기획자문위 등에 따르면, 국정기획위는 2020년 고교 1학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도입해 2022년 3학년까지 적용하는 방안을 지난 19일 확정한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과거 중학교 의무교육처럼 도서·벽지를 시작으로 지역별로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정책 체감도 등을 높이기 위해 학년별 도입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무상교육은 고등학생의 입학금과 수업료, 교과서비, 학교운영지원비를 모두 무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액 국고지원'과 함께 '교육 공공성 강화'의 핵심 공약이다. 교육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고교 무상교육을 전면 도입하기 위해서는 2018년 고교생 수 기준으로 연간 2조4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8000억원가량은 저소득층 교육급여나 공무원 자녀 학비감면 등으로 이미 지원되고 있다. 추가 확보해야 하는 예산은 1조6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고교생 수가 줄어드는 추세를 감안하면 2022년 이후에는 연간 2조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추가 투입 예산도 1조6000억원보다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예산을 어디에서 확보하는지다. 국정기획위는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국고)이 아니라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신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필요한 2조원은 내년부터 전액 정부에서 부담한다.

올해부터 3년간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41.2%인 8600억원을 정부가 지원한다. 내년부터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정부가 지원하는 데 필요한 추가 예산은 1조1000억원 정도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가 부담하는 대신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시·도 교육청에 넘겼다.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에 필요한 예산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올려서 확보할 방침이다. 국정과제에도 명시했다. 시·도 교육청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시·도 교육청은 재정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도 정부가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는 실정이다.

현재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27%와 교육세로 마련한다. 국정기획위는 2019년까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내국세의 21% 이상으로 올리는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교 무상교육 시행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도 2019년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국정기획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예산 문제도 있고, 초중등교육은 기본적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하는 하는 게 맞다"며 "교부금으로 하게 되면 시·도 교육청에 부담을 줄 수 있어 교부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의무교육을 도입할 때도 지방교육재정 교부율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고교 무상교육은 박근혜정부도 추진하려다 무산된 정책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2014~2017년 4년 동안 25%씩 고교 무상교육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현하지 못했다. 교육부는 매년 예산 편성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예산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맞아 정부 예산안에도 담기지 못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재정 전문가인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박근혜정부 때는 공약은 했지만 국정과제에 빠져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며 "이번에는 100대 과제에 포함됐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올리겠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가능성은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정과제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 조정'을 못박은 것은 예산당국과도 어느 정도 사전조율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송 교수는 "현재 내국세 규모가 200조원 정도 되기 때문에 지방교육재정 교부율을 1% 올리면 약 2조원이 더 들어오게 된다"며 "고교 무상교육 예산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도입 시기를 2020년으로 잡으면서 우려가 말끔히 가신 것은 아니다. 국정기획위는 100대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데 5년간 178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 분야만 해도 조 단위 예산이 들어가는 공약이 수두룩하다. 한 수업에 교사 두 명이 붙어 일대일 맞춤형 수업을 하는 '1수업2교사제' 공약도 매년 1조7000억원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초등돌봄교실 확대, 온종일 마을학교 공약에도 연간 2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송 교수는 "국정과제 보고서를 보면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1수업2교사제 등에 대해서는 재원 확보 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그 말은 결국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해결하라는 얘기"라며 "재정수요가 몰리다 보면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누리과정(만3~5세 무상보육)처럼 시·도 교육청에 또 다른 재정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한 번 시행된 정책은 이해당사자의 저항으로 중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막대한 재정소요에 대한 확보책과 그에 따른 다른 교육예산의 축소 등 풍선효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정부(국고)와 지방자치단체(지방비) 간 재정 분담계획이 불분명할 경우 누리과정 예산처럼 정부와 지자체 간 상당한 갈등이 우려되기 때문에 예산 부담주체가 명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딩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