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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운좋게 살아남았다"…'강남역 여혐범죄' 규탄집회

"100여명 참석…성적 대상화·여성대상 범죄 처벌강화"
"여혐문제 해결 안돼" vs "'묻지마'일뿐 '여혐' 아냐"

[편집자주]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치안 좋은 대한민국, 여성에겐 해당 없다!"
"우리들은 살고 싶다. 살아가게 놔두어라!"
"남자만 안전한 치안 1위 국가, 나는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6일 낮 12시쯤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출구 인근에 검은 가면과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20~30대 여성들이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2시간 가량 지난 오후 2시20분쯤 인원이 50여명에서 100여명으로 크게 늘면서 미리 설치된 천막 4개동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콘텐츠, 몰래카메라·성폭행·가정폭력 등 여성대상 범죄에 대한 미진한 처벌 등을 규탄하는 구호를 쉼없이 외치며 여성혐오에 대한 사회 전체의 각성을 촉구했다.

"'여성혐오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고 목놓아 외쳤지만 침묵과 방관하는 남자들도 가해자"라며 "남성의 침묵은 여성의 비명보다 날카롭다. 당신의 침묵은 묵인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주최측은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는 뿌리가 깊고 공기와도 같아 그 존재에 대한 인식과 이해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여성혐오 범죄를 공론화하고 강력한 처벌을 법제화하기 위해 집회를 조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여성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성별인증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시위를 준비하게 됐다"며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기존 여성단체 등과는 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천막 한쪽에 마련된 탁자에서는 여성혐오범죄 형량강화 입법화를 요구하는 서명이 함께 진행됐다. 이날 오후 3시까지 당초 목표 300명의 절반에 이르는 150여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동참했다.

선창을 위해 앞으로 나선 참가자가 준비된 구호를 모두 외치고 나면 다른 참가자가 자리를 대신 채우고, 중간중간 미리 마련된 간식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는 등 9시간으로 예정된 '마라톤 집회'에 대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강남역 인근을 지나는 시민들은 집회 현장 인근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이들의 구호를 듣다가 걸음을 뗐다. 현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시민들도 있었다.

집회 현장을 지켜보던 대학생 김모씨(27)는 "남성에 대한 불신이나 사회적 안전망 등 제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그런 목소리를 들어주고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처를 지나던 배모씨(47·여)는 "모여서 시위하는 모습이 과격하게 보여서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집회 취지에는 동의해 서명했다"며 "누군가는 이런 내용을 외쳐줘야 한다. 그래서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명을 마친 후 처음으로 여성혐오집회에 참석했다는 대학생 방모씨(22·여)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의 안전이나 인권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며 "여성혐오 범죄와 관련된 기사를 하나하나 확인했는데 댓글조차도 일련의 사건들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여성혐오'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며 집회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었다.

직장인 김모씨(26)는 "저렇게 집회까지 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묻지마 범죄로 알려졌는데 이렇게 남성만의 문제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모씨(22)는 "마음껏 하라고 해라. 어차피 안 된다"며 "남녀 인권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여성대통령도 나오는 마당에 그런 건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살인 공론화시위, 왁싱샵 살인사건 규탄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7.8.6/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한편 이날 주최측은 시위 참석자들에 대한 성희롱과 폭언, 신상노출 등을 우려해 취재진이 아닌 일반인의 사진촬영을 수시로 통제하고 사진삭제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은 남성들과 주최측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오후 1시쯤에는 검정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20대 남성이 사진을 찍던 중 주최측의 항의를 받고 급히 현장을 떠나면서 주최측 질서유지 인원 5~6명이 급히 뒤를 쫓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오후 1시30분쯤에는 자신을 유투브 채널 운영자로 소개한 황모씨(30)와 주최측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오후 2시30분쯤에는 사진을 찍은 뒤 급히 자리를 피하던 남성을 주최측이 붙잡은 뒤 현장을 통제하던 경찰의 협조를 얻어 사진을 지우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와 시위에 대한 촬영은 사전 동의를 얻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주최측 요청에 따라 사진을 지우도록 촬영자들에게 협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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