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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과 온정 사이"…공진초 특수학교 설립 두고 주민 온도차

"집값도 생존권 문제"vs"온정 베풀어야" 의견 팽팽
복지부 "병원 설립 불가" 소식에 '희망' 모락모락

[편집자주]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설 특수학교를 두고 논란이 일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결사반대'를 주장하고 있다.2017.9.10/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들어설 특수학교를 두고 논란이 일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결사반대'를 주장하고 있다.2017.9.10/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왜 강서구에 특수학교를 2개나 세워요? 지역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어. 다 장애인만 사는 줄 알 거 아니에요."

"집 앞에 병원이 생기면 좋겠죠. 하지만 장애인 아이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필요하다면 장애인 학생들에게 우선권을 줘야죠."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설 특수학교를 놓고 촉발된 주민 간 온도차가 극명하게 갈렸다. 공진초를 중심으로 좌우 아파트 단지 입주민의 의견이 정반대로 나뉜 모양새다.

지난 5일 가양동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부모들은 '장애인에게도 교육을 받을 권리를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주민들은 "왜 굳이 여기에 특수학교를 지으려고 하느냐", "특수학교는 마곡지구에 짓고 공진초에는 한방병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외면했다.

10일 오전에도 공진초 맞은편에 형성된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는 '서울시 교육청이 국립 한방병원을 빼앗아 가려합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됐다.

◇ 반대측 "왜 강서구만 희생하나…집값도 생존권 문제"

밤이 되면 파란 불빛이 환하게 켜진다는 일명 '블루라인'에 사는 고급 아파트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공진초 부지에는 한방병원이 들어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결사반대'를 외치는 중이다.

강아지와 함께 단지내를 산책하던 김모씨(44·여)는 "지역 이미지를 무시해선 안 된다"며 "화곡동에도 특수학교가 있는데 특수학교가 하나 더 들어서면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냐"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입주자 남모씨(28·여)도 "지역 이기주의부터 떠올릴 게 아니라 형평성부터 따져야 한다"며 "언제까지 강서구만 (특수학교를 설립해서) 희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도 있었다. 가양동에서 7년째 거주하고 있다고 밝힌 이모씨(53)는 "특수학교가 들어서고 장애인 학생들이 오가면 집값은 당연히 내려간다"며 "노후에 집 하나 장만해서 살고 있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이어 "장애인 가족들도 '생존권'을 운운하지만, 우리도 '생존권'을 걸고 싸우는 것"이라며 단순히 님비현상(NIMBY, 지역이기주의 현상)의 문제로 바라보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공진초등학교 옛 부지. 폐교된 학교 운동장에는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2017.9.10/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공진초등학교 옛 부지. 폐교된 학교 운동장에는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2017.9.10/뉴스1© News1 최동현 기자

◇ 찬성측 "장애인 학생 애틋해…사회 온정 나눠야"

공진초를 둘러싼 모든 입주민이 '특수학교 반대'를 외치는 것은 아니다. '블루라인' 건너편에 형성된 '가양 4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대체로 "특수학교가 설립되는 편이 좋겠다"며 "장애인 학생들의 교육이 먼저"라는 입장을 내놨다.

폐교 후 관리를 하지 않아 들풀이 무성하게 자란 공진초 운동장을 거닐던 김모씨(70)는 "공진초를 둘러싼 입장차를 잘 알고 있다"며 "아무래도 집 앞에 병원이 들어서면 좋겠지만, 장애 학생들이 다닐 학교가 부족하다면 양보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했다.

4단지에서 만난 서모씨(65·여)도 잠시 갈등하더니 특수학교를 택했다. 서씨는 "단지 내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한방병원을 지으면 다니기도 가깝고 좋겠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편하자고 장애 학생들을 내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집값도 중요하지만 이웃을 생각하는 온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인 형과 함께 살고 있다고 밝힌 윤모씨(39)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지 알아야 한다"며 특수학교 설립에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윤씨는 "단순히 외출하는 것도 장애인들에겐 너무나 힘겨운 일"이라며 "특수학교가 마곡지구에 지어지면 어린 장애 학생들이 겪을 고통이 너무 크다"고 전했다.

◇복지부 "한방병원 설립 없어"…장애부모연대 "지켜볼 것"

한편 일부 주민들이 요구하는 한방병원 건립은 사실상 사업 자체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방병원 설립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날 "지난 3월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를 세울 예정이라는 입장을 서울시교육청에서 통보받았다"며 "이후로는 병원 설립 논의를 전면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 건립을 추진해도 공진초의 터는 시교육청 소유이고, 도시계획법상 학교용지로 지정돼 있다"며 "애초에 병원 건립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는 "복지부가 병원을 설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희망을 품고 진행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부대표는 "어제도 한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공진초를 다녀왔는데 지나가는 주민들께서 '왜 특수학교 안 짓느냐, 장애인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며 지지해주셨다"며 "특수학교는 우리에게 죽을 만큼 절실한 생존의 문제인 만큼 반드시 특수학교 설립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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