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사무실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2017.9.21/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이 25일 임기를 시작하면서 수직적 구조의 사법행정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와 더불어 사법행정에 일선 법관들의 참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탈권위적이고 수평적인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통한다. 춘천지방법원장 재직 시절 소속 판사들을 관사에 불러 라면 14인분을 손수 끓여 대접하거나, 법정 경위가 입원하자 직접 병문안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특히 김 대법원장이 사무분담 등을 자신을 뺀 법관들끼리 협의해 의사결정하도록 했던 사법행정 방식은, 이른바 '춘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되고 있다.
법원장이 수석부장판사와 의논해 영장담당, 민·형사 재판부 등을 정한 뒤 판사회의에 형식적 동의를 구했던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처음부터 판사들끼리 협의해 정하도록 한 것이다. 법원장과 함께 사법행정을 책임지는 기획법관의 임명도 투표에 부쳐 선출했다. 법원의 각종 내규는 물론 인사이동, 출산휴직 등 세부적인 문제도 판사회의에서 결정됐다.
'춘천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같은 수평적 사법행정이, 최근 일선 법관들이 논의하고 있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와 맥을 같이하고 있어서다. 대법원장과 '갈등 관계'에 있던 이전과 달리 법관회의의 역할과 그 관계가 전향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올해 초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를 계기로 발족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3차 전체회의에서 대법원장 자문기구로서의 상설화를 골자로 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안'(가칭)을 의결했다.
규칙안에는 △대법원 규칙의 제정·개정에 대한 의견 제출 △대법원 내규·외규에 대한 수정 또는 변경 요구 △법관인사위원회,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 등 각종 사법행정에 관한 위원회에 법관 위원 추천 △전보 인사 등 주요 인사원칙에 대한 설명 요구 및 의견의 제시 △사법정책에 대한 의견 개시 및 제도 개선 논의 △기타 사법행정 관련한 사안(각급 법원 판사회의 등의 의결 또는 대표자 5인 이상 동의로 의제로 하기로 한 사항) 등 사법부 행정 전반에 일선 법관들이 뽑은 대표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관회의는 이같은 내용의 규칙안을 조만간 대법관회의에 송부, 제정을 요청할 예정이다. 김 대법원장이 의장을 맡는 대법관회의가 규칙안을 얼만큼 수용하냐는 향후 사법행정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법행정과 관련해 "법관회의가 상설화된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법행정을 전담해 오던 기존 법원행정처의 역할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처 주요 실장급(고법 부장판사) 인사, 조직 개편 및 축소도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에도 힘이 실린다.
그동안 법원행정처는 수직적 사법행정의 정점에서, 대법원장의 수족 역할을 하며 주요 행정업무를 전담해 왔다. 법원행정처 출신이 고법 부장판사 자리로 많이 '승진'해, 법원 내 엘리트 코스로 평가됐다. 이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은 결국 재판을 지원하는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현재는 행정이 오히려 재판을 '리드'하는 상황"이라며 "이것이 사법의 관료화 폐단을 가져왔고,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사태 문제의 발화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취임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선행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 인준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앞장서서 '리드'하지 않고, 항상 중간에 서서 여러분들의 마음과 뜻을 모아 해결해 나가겠다"며 "구체적인 것은 취임 후에 청사진을 그려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