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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폐쇄하자"…무분별한 '익명성'에 뿔난 대학생들

"타대생·일반인이 재학생인 척한다"…불만 증폭
제보글 검증작업 사실상 전무…"삭제 등 사후조치 필요"

[편집자주]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인터넷 게시판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대학교 대나무숲'이 무분별한 익명성에 가려 '베일의 숲'이 되어가고 있다. 정체불명의 글이 학교 이름을 먹칠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나무숲 '폐쇄 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대나무숲은 2013년 대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다양한 고민과 애환을 토로하는 익명 게시판으로 태동했다. '대신 전해드린다'는 정신으로 초기 활발한 소통과 내부고발 등이 이뤄졌지만, 게시판 규모가 커지고 외부인 참여가 늘어나면서 역효과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익명성을 등에 업은 정체불명의 글이 학교 이름을 대표해 확산된다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는 '학벌주의가 심해졌으면 좋겠다'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익명의 글에는 'SKY출신이 더 대접받았으면 좋겠다', '기업에서도 대학 순으로 (지원자를) 자르고, 연봉도 대학순서로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내용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거센 논란을 낳았다. 네티즌 반응에는 '저런 사상을 가진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며 작성자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었지만, '학교 수준 봐라'며 대학과 재학생을 질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같은 논란에 해당 학교 재학생들은 잔뜩 뿔이 난 상태다. 졸지에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집단으로 매도돼 온갖 질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공과대학 재학생 김현민씨(26)는 "글 작성자가 재학생인지 아니면 타대생인지부터 모르겠다"며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 하나 때문에 왜 학교 전체가 욕먹어야 하나"라고 했다.

(자료사진) © News1 이승배 기자
(자료사진) © News1 이승배 기자

물론 대나무숲은 내부고발 같은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지난 14일 홍익대 대나무숲에 남학생들 8명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같은 학교 여학생 등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주고받았다고 폭로해 학교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선 상태다. 

대부분의 대학 대나무숲은 게시판 운영자에게 글을 제보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재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과 일반인까지 글을 보낼 수 있다. 소수의 운영자들은 욕설과 근거 없는 비난 등 부적절한 내용 글은 배제하는 과정을 거쳐 페이지에 내용을 게재한다.

하지만 외부인이 재학생인 척 글을 써도, 이를 검증하는 절차가 제한적이라는 문제점이 제기된다. 익명성을 담보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대나무숲 취지 아래, 운영자들이 개입과 가치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기 때문이다. 논란되자 해당 대나무숲 운영자도 지난 18일 "대학생이 아닌 사람은 질문할 수 없도록 인증 절차를 강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매번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면서 대나무숲 폐지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학교 재학생 커뮤니티에서 진행된 대나무숲 폐지 찬반 투표에서도 '폐지하자'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나무숲은 대학생이 익명을 통해 자유로운 의견과 비판을 개진했던 공간이었다"며 "하지만 최근에 글을 거르는 데 한계가 있어 왜곡과 무분별한 폭로가 심해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윤 교수는 "대나무숲 폐지를 논의하기보다는 사후에라도 사실관계를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글을 삭제하는 등 내부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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