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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FCC, 망중립성 폐지…국내 '제로레이팅' 불붙나

제로레이팅 활성화, 데이터 트래픽 분담요구 커질듯

[편집자주]

아짓 파이 FCC 위원장© AFP PHOTO / Nicholas Kamm
아짓 파이 FCC 위원장© AFP PHOTO / Nicholas Kamm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14일(현지시간) '망중립성' 정책을 결국 폐기하면서 국내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열린 인터넷'을 강조하며 망중립성이 보장됐지만 도널드 트럼프로 대통령이 바뀌면서 상황이 180도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망중립성을 강조하는 기조여서 미국의 결정에 따른 파급력이 당장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망중립성 원칙이 흔들리면서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는 활성화될 공산이 크다. 콘텐츠 사업자에 대한 데이터 트래픽 부담 요구도 높아질 전망이다.

◇美 FCC, 대통령 바뀌자 태도 180도 바꿔 

FCC가 지난달말 마련한 망중립성 정책 폐기 최종안은 이날 표결에서 3대2로 통과됐다. 5명으로 구성된 FCC 위원 가운데 공화당 추천인사 3명이 찬성했다. 이에 따라 오바마 시절 도입된 망중립성 정책은 트럼프 시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FCC의 이같은 '변심'은 대표적인 망중립성 반대론자인 아짓 파이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FCC 위원장에 오르면서부터 예고돼왔다.

'망 중립성'은 개인이든 사업자든 인터넷망 이용에 있어서 차별받지 않고 공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특정 유선 인터넷망 업체가 기업규모나 국적, 시장 경쟁상황 등을 이유로 망 접속을 끊거나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날 FCC 위원들은 광대역 인터넷 액세스를 통신법상 '타이틀 2' 대신에 '타이틀 1'로 변경하는 망중립성 폐기안을 통과시켰다.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의 지위가 기존 '커먼캐리어'(기간통신사업자)에서 '정보서비스제공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로 바뀐 것으로 컴캐스트, AT&T, 버라이즌 등 미국 통신사업자(ISP)들은 자본주의 시장 원칙에 따라 특정 콘텐츠를 선별하는 등의 재량권이 강화된다.

ISP들은 콘텐츠 사업자에 대해 차별적 가격을 부과하거나 자사 콘텐츠 우선 정책 등을 펼칠 수 있다. 특정 콘텐츠 사업자와 손잡고 이용자의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제로레이팅도 더 활성화될 전망이다.

◇우리 정부 "제로레이팅 사전규제 안해" 

미국의 망중립성 폐기가 당장 국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글로벌 추세에 맞춰 지난 2011년 가이드라인 형태의 망 중립성 지침을 시행했고, 2013년 합리적 트래픽 관리기준을 마련했다. 또 지난 8월부터는 망 중립성 강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도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조대근 잉카리서치앤컨설팅 대표는 "미국이 망중립성을 폐기하는 것은 사전규제를 풀어 인터넷 사업자의 투자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별도의 법체계가 있는 한국과는 당장은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인터넷 시대에 망중립성이라는 거대 담론이 무너진 만큼, 중장기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국내에서는 제로레이팅 논란이 불붙을 전망이다. 제로레이팅은 특정 콘텐츠에 대한 데이터 이용료를 면제 또는 할인해 주는 것으로 당초 망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의 망중립성 정책 폐기로 제로레이팅은 더 활성화될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올 상반기 자사 가입자에게만 인기 모바일게임 '포켓몬고'에 이용시 데이터 비용을 전액 무료로 제공하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밖에도 통신3사는 모바일 동영상, 내비게이션, 음원 서비스에 대해 자사 고객에게 데이터 사용료를 받지 않는 제로레이팅 서비스를 대거 도입한 상태다. 

규제권한을 지닌 정부도 제로레이팅에 대해서는 탄력적인 입장이다. 송재성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우리나라는 아직까찌 제로레이팅이 크게 활성화되지 않아 특정 잣대로 규제하기 보다는 시장 발전 정도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인터넷업계는 망 중립성 폐지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골리앗'과의 역차별 문제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망중립성 폐지로 앞으로 국내 통신사로부터 트래픽 부담 요구까지 떠안게 돼서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미국이 망중립성을 폐기한 것은 유감이고 상당히 우려스럽다"며 "당장에 (국내에) 미칠 영향은 없겠지만 향후 영향에 대해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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