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공유하기

법원 "국가가 성매매 방조…기지촌 피해여성에 배상해야"(종합)

법원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이후 격리도 위법"

[편집자주]

© News1 
© News1 

주한미군 주둔지에 조성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에 대해 정부가 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나왔다. 1심보다 배상 범위와 배상액이 증가했다.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8일 이모씨 등 116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 △성매매 정당화 조장 등 행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74명의 피해여성에 대해 국가가 각 7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1심과 달리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시행 이후에 격리된 여성들에 대해서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피해여성 43명에게 각 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의 일반적 보호의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다만 정부의 기지촌 운영·관리 과정에서 성매매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담당 공무원 등은 자치조직을 통해 기지촌 위안부에게 이른바 '애국교육'을 실시해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을 직접 교육했다"며 "국가는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한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피해여성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나아가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며 "피해여성들은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심에서는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시행 이전 일부 원고들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며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시행 규칙이 시행된 이후에도 속칭 컨택(접촉자 추적조사)로 격리 수용하거나 페니실린을 강제로 투약한 것 역시 위법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여성 박모씨는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처음 소송을 냈을 때 떳떳한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재판이 시작된 지 3년7개월 만에 오늘의 판결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씨는 "우리와 함께 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지촌 동료들과 언니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고통의 나날을 보상받고 동료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사과받는 그날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여성 측 대리인 하주희 변호사는 "국가가 사실상 포주 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의미 있다"며 "또 피해여성들이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게 한 국가의 조직적·폭력적 성병관리까지 인정됐다. 사실상 재판에서 주장해온 국가의 책임을 모두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씨 등은 1957년부터 1990년대까지 국내 미군기지 근처에 있던 기지촌에서 위안부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에 종사했다. 이들은 정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조장하고 조직적인 성병관리 업무로 불법 격리 수용치료를 해 신체적·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정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개선정책 등을 시행한 것은 이씨 등에 대한 불법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인의 성매매업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고양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성병 감염자들을 격리해야 한다는 법적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 성병에 감염된 여성들을 격리 수용한 부분은 불법행위로 인정했다. 또 성병 감염인에 대한 격리 수용 규정이 시행된 1977년 8월 이전에 격리 수용된 여성 57명에 대해 손해배상을 인정했지만, 나머지 65명의 여성에 대해서는 청구를 기각했다.

1심은 "국가 권력기관의 국민에 대한 불법 수용 등 가혹행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중대한 인권침해"며 "정부는 이씨 등 57명에게 각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로딩 아이콘